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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SON 06 · 양념관

2화. 세금 2만 원 받으러 갔다가 택시비 2만 5천 원 쓴 날

2026.09.21·약 5분

배보다 배꼽이 더 컸던 날.


예전에는 세금을 발로 뛰면서 받았다.

지금 생각하면 참 오래전 이야기다.

정확히 몇 년도였는지는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내가 시골 세무서에서 근무하던 시절이었다.

체납 특별정리 기간이 되면 아침부터 사무실이 분주했다.

그날 찾아갈 체납자 명세를 챙기고, 주소를 확인하고, 영수원부도 챙겼다.

지금처럼 컴퓨터 앞에 앉아서 체납자의 재산을 조회하고 전산으로 처리하던 시절이 아니었다.

직접 찾아가야 했다.

영수원부와 책받침을 들고 다녔다


그때 체납정리를 하려면 반드시 챙겨야 하는 것이 있었다.

‘영수원부’라는 작은 영수증 책자였다.

요즘 젊은 직원들은 본 적도 없을 것이다.

영수원부는 첫 장에 글씨를 쓰면 먹지를 통해 그 밑의 종이까지 똑같이 찍히는 방식이었다.

첫째 장은 보관용.

둘째 장은 납세자에게 주는 영수증.

셋째 장은 세무서 징세계 제출용.

넷째 장은 은행용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여러 장을 계속 쓰다 보면 먹지 때문에 다음 장까지 글씨가 밀려 찍히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다른 영수증에 글씨가 찍히지 않도록 책받침 하나를 중간에 끼워놓고 다녔다.

체납정리 나갈 때 가방 안에는 체납자 명세와 영수원부, 책받침이 들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원시적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게 세금을 받는 현장이었다.

세금을 많이 받은 날은 주머니가 두둑했다


체납자를 찾아가 돈을 받으면 그 자리에서 영수증을 써줬다.

현금으로 세금을 받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체납정리를 잘한 날은 직원들 주머니가 두둑했다.

물론 내 돈은 아니었다.

국가에 납부해야 할 세금이었다.

받은 세금은 다음 날까지 은행에 불입해야 했다.

그러니 직원 입장에서는 부담도 컸다.

하루 종일 체납자를 찾아다니며 받은 현금을 직접 가지고 세무서로 돌아와야 했고,
다음 날 은행에 제대로 불입할 때까지 책임져야 했다.

실제로 돈을 잃어버리는 직원도 있었다.

잠깐 개인적으로 사용했다가 제때 채워 넣지 못해 사고가 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면 바로 문제가 됐다.

징계를 받은 직원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국가가 받아야 할 세금을 직원 개인이 현금으로 들고 돌아다녔다는 것 자체가 참 아슬아슬한 방식이었다.

그런 시절이었다.

체납세금 2만 원을 받으러 정미소에 갔다


체납 특별정리기간이었다.

시골에 있는 정미소 한 곳에 체납이 있었다.

금액은 2만 원 정도였다.

요즘 생각하면 2만 원 받으러 거기까지 갔느냐 싶겠지만,
체납정리기간에는 금액이 작다고 그냥 둘 수 없었다.

주소를 들고 찾아갔다.

버스를 타고 한참을 들어가 정미소를 찾았다.

주인은 생각보다 순순히 세금을 냈다.

2만 원을 받고 영수원부를 꺼내 영수증도 끊어줬다.

여기까지는 아주 순조로웠다.

그런데 그때부터 정미소 주인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국민이 낸 세금이 어떻고,

정부가 어떻고,

정치가 어떻고….

처음에는 그냥 듣고 있었다.

세금 받으러 간 사람이 돈 받자마자 돌아서기도 그렇고,
당시에는 납세자 불만을 듣는 것도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야기가 끝날 기미가 없었다.

한참 동안 일장 연설을 듣고 밖으로 나왔다.

버스를 타려고 정류장 쪽으로 갔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았다.

이상해서 다시 정미소로 와서 주인에게 물어봤다.

“버스 언제 옵니까?”

정미소 주인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어? 여기 버스 하루 두 번밖에 안 다니는데….”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아니, 그걸 이제 얘기하면 어쩌라고요….”

이미 마지막 버스는 지나간 뒤였다.

세무서로 돌아갈 방법이 없었다.

결국 택시를 불렀다.

택시를 타고 세무서까지 돌아오니 요금이 2만 5천 원 정도 나왔다.

그날 내가 받은 체납세금은 2만 원.

택시비는 2만 5천 원.

세금 2만 원 받으러 갔다가 내 돈 2만 5천 원 쓰고 돌아온 셈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웃긴다.

아마 그날 체납정리 실적에는 ‘2만 원 징수’라고 적혀 있었을 것이다.

내 택시비 2만 5천 원은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았겠지만.

한 달 뛰면 구두 밑창이 닳았다


그때 체납정리는 정말 발로 했다.

주소 하나 들고 납세자를 찾아갔는데 사람이 없으면 다시 가야 했다.

집으로도 찾아가고,

사업장으로도 찾아가고,

시장 골목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하루 종일 걷는 날이 많았다.

한 달 정도 집중적으로 체납정리를 하고 나면 구두 밑창이 눈에 띄게 닳았다.

실제로 밑창을 새로 갈아야 할 정도였다.

그래서 그 시절 체납정리를 생각하면 어려운 세법이나 거창한 사건보다 먼저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체납자 명단.

먹지가 들어 있던 영수원부.

글씨가 다음 장에 찍히지 않게 끼워 다니던 책받침.

세금으로 두둑해진 주머니.

그리고 닳아버린 구두 밑창이다.

지금은 국세행정도 많이 달라졌다.

전산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많아졌고, 금융과 재산에 관한 정보도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체계적으로 관리된다.

하지만 내가 국세청에 처음 들어갔던 시절에는 사람이 직접 찾아다니며 세금을 받았다.

말 그대로 세금을 발로 뛰면서 받던 시절이었다.

가끔 그때를 생각한다.

다시 돌아가서 하라고 하면?

못한다.

아니, 안 한다.

세금 2만 원 받으러 갔다가 택시비 2만 5천 원 쓰고 돌아오는 일을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정말 못할 것 같다.

그래도 그 시절 그렇게 닳은 구두 몇 켤레가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같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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