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출처조사, 재산만 보는 게 아니다 — 소비도 본다
내가 모 유명 백화점 초VIP 고객들을 상대로 세미나를 할 때 이야기다.
자금출처조사라고 하면 대부분 부동산을 구입하거나 금융자산이 갑자기 늘어난 경우를 생각한다.
그런데 자금출처조사에서 또 하나 중요하게 보는 것이 있다.
소비다.
자금출처조사의 기본적인 구조를 이해하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국세청은 소득과 재산, 재산취득과 소비 등을 분석해 자금출처조사 대상자를 선정한다.
아주 단순하게 설명하면 이렇다.
신고한 소득과 재산에 비해 취득한 재산과 소비한 금액이 지나치게 크다면 그 돈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재산을 취득하는 것도 돈이 나가는 것이고 소비하는 것도 돈이 나가는 것이다.
오늘은 그중에서 소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백화점에서 1년에 3억 원을 쓰는 사람들
내가 세미나를 했던 백화점에는 연간 소비액이 상당한 VIP 고객들이 있었다.
1년에 3억 원, 5억 원 이상을 사용하는 고객들을 VIP 또는 초VIP 고객으로 별도로 관리하는 것 같았다.
물론 본인이 사업을 하거나 충분한 소득과 재산이 있어서 자기 돈으로 사용한다면 별문제가 없다.
그런데 당시 세미나에 참석한 사람들 중에는 별도의 소득 없이 집안 살림을 하는 배우자들도 상당수 있었다.
여기서 자금출처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상식적으로 많이 알고 있는 것처럼 배우자 간 증여에서는 10년간 6억 원까지 증여재산공제를 받을 수 있다.
이걸 이해하기 쉽게 10년으로 나눠보면 1년에 6천만 원, 한 달에 500만 원 정도다.
그런데 별도의 소득이 거의 없는 배우자가 1년에 3억 원씩 소비한다고 해보자.
5년이면 15억 원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생긴다.
“그 15억 원은 어디에서 나온 돈일까?”
생활비로 쓴 돈은 다르게 봐야 한다
물론 남편이 아내에게 생활비를 줬다고 해서 모두 증여세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사회통념상 인정되는 생활비를 받아 실제 생활비로 사용했다면 증여세 과세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어디에 사용했느냐다.
가족의 식비,
주거비,
교육비,
통상적인 의식주 비용 등으로 실제 사용했다면 일반적인 재산 증여와는 다르게 봐야 한다.
반대로 생활비 명목으로 받은 돈을 사용하지 않고 계속 모아서 금융재산을 만들거나 부동산을 취득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생활비라고 해서 무조건 비과세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생활비로 소비됐는지를 보는 것이다.
백화점에서 쓴 돈은 어떻게 볼까?
실제로 자금출처조사를 하게 되면 고액의 카드사용액도 그 내용을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소득이 거의 없는 아내가 남편 카드 또는 본인 카드로 상당한 금액을 사용했다고 해보자.
사용내역에는 식료품도 있을 것이고,
의류도 있을 것이고,
가족생활을 위해 사용한 돈도 있을 것이다.
반면 명품이나 고가의 시계·보석을 구입했을 수도 있다.
자동차나 고급 스포츠회원권처럼 재산적 가치가 있는 것을 취득했을 수도 있다.
이걸 전부 똑같이 볼 수는 없다.
실제 생활비인지,
단순 소비인지,
본인의 재산취득으로 이어졌는지,
배우자로부터 경제적 이익을 이전받은 것으로 볼 수 있는지를 구분해야 한다.
1년에 3억 원씩 쓴다면?
다시 처음 사례로 돌아가 보자.
별도의 소득이 거의 없는 배우자가 1년에 3억 원씩 사용했다.
5년이면 15억 원이다.
배우자 증여재산공제는 10년간 6억 원이다.
그렇다면 단순하게 보더라도 상당한 금액에 대해 자금의 원천을 확인할 필요가 생긴다.
다만 15억 원에서 배우자공제 6억 원을 빼고 나머지 9억 원이 무조건 증여재산이 된다는 뜻은 아니다.
실제로 생활비로 사용한 금액은 얼마인지,
본인의 기존 재산에서 사용한 돈은 없는지,
남편이 부담한 돈은 얼마인지,
재산취득으로 이어진 부분은 없는지,
과거에 별도로 증여받은 재산은 없는지 등을 확인해야 한다.
그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증여세 문제가 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내가 1년에 3억 원, 5년에 15억 원이라는 숫자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소득이 거의 없는 사람이 상당한 금액을 계속 소비한다면 그 돈의 출처가 자금출처 문제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사국에서도 고액 소비자료를 들여다봤다
예전에 서울청 조사국에 근무할 때도 고액 카드사용 내역을 검토해서 세무조사에 활용하려고 했던 것이 기억난다.
조사하는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유는 간단하다.
소득이 별로 없는 사람이 상당한 금액을 계속 사용한다.
그러면 궁금할 수밖에 없다.
“이 사람은 무슨 돈으로 이렇게 쓰고 있지?”
자금출처조사도 결국 같은 질문이다.
10억 원짜리 아파트를 샀다면
“그 10억 원은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라고 묻는다.
그런데 특별한 소득이 없는 사람이 수년 동안 10억 원을 소비했다면 역시
“그 돈은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라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하나는 재산취득이고 하나는 소비일 뿐, 둘 다 결국 돈이 나간 것이다.
일반적인 카드사용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매월 카드값을 고민하면서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걱정할 문제는 아니다.
내가 이야기하는 것은 고액 소비다.
본인의 신고소득이나 보유재산으로 설명할 수 있는 범위에서 생활하고 소비한다면 자금출처 문제를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별도의 소득이나 재산이 거의 없는 사람이 장기간 상당한 금액의 카드사용이나 현금영수증 사용을 계속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특히 그 과정에서 배우자의 자금이 사용됐거나 본인 명의의 재산취득으로 연결됐다면 증여 문제까지 같이 검토할 필요가 있다.
자금출처조사라고 하면 대부분
“내가 어떤 재산을 샀는가?”
만 생각한다.
그런데 하나를 더 봐야 한다.
“나는 그동안 얼마를 썼는가?”
재산취득도 돈이 나가는 것이고,
소비도 돈이 나가는 것이다.
자금출처조사에서는 소비도 자금흐름의 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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