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자산의 자금출처조사
어느 날 중년의 사모님 한 분이 거의 울상이 되어 상담 신청을 해왔다.
내용은 ‘자산취득과 관련한 자금출처 소명안내’, 즉 자금출처 서면조사 통지였다.
제출한 소명내용을 검토한 뒤 내용이 충분하지 않으면 실지조사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자금출처나 증여세와 관련해서 아마 가장 사례가 많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내용이 아닐까 싶다.
내용이 좀 길어지면 두 편 정도로 나눠서 다뤄볼 생각이다.
생각보다 복잡하고 다룰 내용이 많다.
가족의 금융자산 운용 습성
일단 일반적인 자산가들의 금융자산 운용 모습을 살펴보자.
남편은 밖에서 일을 하고, 아내는 집안 살림과 함께 남편이 벌어다 준 돈과 재산을 관리하고 불리는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틈나는 대로 재테크 정보를 수집하고 금융자산 투자도 활발하게 한다.
투자수익이 좋은 금융상품이 나오면 온 가족을 동원하기도 한다.
남편, 본인, 큰아들, 작은아들 명의로 나누어 투자하는 식이다.
상담을 온 고객도 그랬다.
최초 투자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남편 명의 : 15억 원(증권)
본인 명의 : 10억 원(우리은행)
큰아들 명의 : 5억 원(하나은행)
작은아들 명의 : 5억 원(신한은행)
그러던 중 남편 명의의 채권이 만기가 됐다.
그 돈을 본인 명의의 우리은행 계좌로 합쳤다.
그러면서 본인 명의 금융자산은 25억 원이 됐다.
또 국민은행에서 좋은 상품이 나왔다.
이번에는 두 아들 명의로 각각 5억 원씩 추가했다.
큰아들 : 하나은행 5억 원 + 국민은행 5억 원
작은아들 : 신한은행 5억 원 + 국민은행 5억 원
그러다 다시 1년 정도 지나 두 아들의 금융자산이 만기가 되자 그 돈을 남편 명의로 모두 모았다.
이런 식으로 가족 간에 금융자산을 옮겨가며 20년 넘게 운용해왔다.
그동안 투자수익까지 붙으면서 가족 전체의 금융자산은 40억 원 정도로 불어나 있었다.
이런 집안들이 의외로 상당히 많았다.
달라진 시대, 달라진 리스크
문제는 세상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금융실명제는 1993년 도입됐다.
그리고 2014년 금융실명법 개정으로 재산은닉·자금세탁 등 탈법행위를 목적으로 하는 차명거래가 명시적으로 금지됐다.
따라서 과거 가족들이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가족 명의의 계좌를 이용했던 것과 현재의 법적 환경을 똑같이 볼 수는 없다.
특히 탈세 등 불법적인 목적이 있는 차명거래라면 별도의 금융실명법 문제까지 발생할 수 있다.
또 금융거래를 둘러싼 국세청의 정보수집 환경도 크게 달라졌다.
금융정보분석원(FIU)은 2001년 설립됐고, 금융기관의 의심거래정보 등을 수집·분석하여 법에서 정한 법집행기관에 제공하는 체계가 만들어졌다.
국세청의 소득·재산 관련 전산분석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
그동안 아무 문제 없이 금융자산을 운용해오던 이 가족에게 어느 날 국세청에서 자금출처 소명안내문이 날아왔다.
그런데 한 사람이 아니었다.
상담을 온 사모님이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 온 식구가 다 나왔어요.”
자금출처 소명안내문이 4장 나온 것이다.
왜 온 가족에게 소명안내가 나왔을까?
PCI 시스템의 작동원리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국세청이 개인의 재산과 소득을 파악하는 자료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 가족처럼 금융자산을 운용하다 보면 만기가 되고 이자가 지급된다.
금융기관은 이자소득 등을 지급하면 세법에 따라 원천징수하고 금융소득 지급명세서를 국세청에 제출한다.
따라서 금융소득 관련 자료가 계속 국세청에 축적된다.
그런데 이 가족은 20년 동안
남편에게 갔다가,
아내에게 갔다가,
큰아들에게 갔다가,
작은아들에게 갔다가,
다시 남편에게 돌아오는 식으로 금융자산을 운용했다.
국세청 입장에서는 각 개인이 신고한 소득과 재산의 증가, 금융소득 등 여러 과세자료를 비교해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신고된 소득이나 확인되는 자금원천에 비해 재산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는 사람은 자금출처 확인 대상이 될 수 있다.
결국 이 가족은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금융자산의 자금출처 문제가 생긴 것이다.
만약 처음부터 이렇게 운영했다면 어땠을까?
최초 20년 전부터 금융자산을 다음과 같이 유지했다고 생각해보자.
남편 명의 : 15억 원(증권)
본인 명의 : 10억 원(우리은행)
큰아들 명의 : 5억 원(하나은행)
작은아들 명의 : 5억 원(신한은행)
그리고 사람 간에 자금을 이동시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상품이 만기가 되더라도 같은 사람 명의로 다른 상품에 재투자하고,
금융기관을 옮기더라도 계속 본인 명의로만 운용했다면 말이다.
그랬다면 적어도 가족 간에 거액의 금융자산이 반복적으로 이동하면서 각 사람의 자금출처 문제가 새롭게 드러나는 상황은 상당 부분 줄었을 것이다.
이 부분은 중요하다.
국세청에는 이자·배당 등 금융소득 지급자료가 계속 축적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20년 전 최초 투자원금이 누구의 돈이었는지까지 자동으로 확인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가족 사이에서 거액의 금융자산이 계속 이동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때부터 각 사람에게
“이 돈은 어디에서 났습니까?”
라는 새로운 질문이 생길 수 있다.
오래된 돈이라고 무조건 끝난 것은 아니다
여기서 한 가지는 구분해야 한다.
오래전에 발생한 증여라면 부과제척기간 문제가 있다.
현행 국세기본법상 상속세·증여세의 일반적인 부과제척기간은 10년이고, 무신고나 일정한 거짓·누락신고 등의 경우에는 15년이다.
따라서 20년 전에 이루어진 단순한 증여라면 부과제척기간이 이미 지났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20년 지났으니 이제 아무 문제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래된 금융자산을 지금 다른 가족에게 옮기면 그 이동 자체가 새로운 증여인지, 실제 소유자가 누구인지, 명의만 바뀐 것인지 등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과거의 문제가 끝났는지와 오늘 새로 하는 거래에서 세금 문제가 생기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결국 자산의 변동성이 문제였다
이 사례에서 내가 중요하게 보는 것은 자산의 변동성이다.
가족 명의의 금융자산이 수십 년 동안 사람을 바꿔가며 이동했다.
그 과정에서 금융소득 자료가 생기고, 각 사람의 재산도 늘었다 줄었다 했다.
그리고 결국 가족 네 명 모두에게 자금출처 소명안내가 나왔다.
나는 이런 오래된 가족 금융자산을 상담할 때 상당히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누구 돈인지도 정확하게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냥 아버지 앞으로 모읍시다.”
“아들 계좌에서 빼서 어머니에게 보내세요.”
이런 식으로 섣불리 움직이면 안 된다.
그 이동 자체가 새로운 세금 문제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먼저
누가 실제 자금을 부담했는지,
현재 누구 명의로 얼마가 있는지,
과거 가족 간에 어떤 이동이 있었는지,
각각의 이동이 증여인지 단순한 명의 이동인지
부터 확인해야 한다.
그다음에 정리할 것인지, 그대로 둘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
부동산을 취득할 때도 마찬가지다.
가족의 돈이 뒤섞인 계좌에서 바로 취득대금을 지급하기보다는 본인의 자금출처가 명확하게 설명되는 자금으로 취득하는 것이 좋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경우가 있다
오랫동안 가족 명의로 금융자산을 운용해온 사람들을 상담하다 보면 생각보다 이런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미 수십 년 동안 돈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움직였다.
지금 한 사람에게 모으자니 새로운 증여 문제가 걱정되고,
그대로 두자니 실제 소유관계와 명의가 맞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그런데 이런 경우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게 현재로서는 정답일 때도 있다.
괜히 서둘러 움직였다가 새로운 문제를 만들 필요는 없다.
과거의 자금 흐름부터 정확하게 확인하고 하나 씩 정리해야 한다.
시간이 필요하다.
물론 케이스마다 다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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