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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SON 04 · 증여세 블로그

10화. 묻지마 채권의 전설

2026.09.22·약 9분

내 생애 최고의, 그러나 최악의 컨설팅


내가 지금까지 했던 수많은 세무컨설팅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하나 있다.

내가 알고 있던 세법과 금융지식을 총동원해 만든 구조였다.

결과만 놓고 보면 내 생애 최고의 컨설팅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하고 싶지 않다.

내 생애 최고의, 그러나 최악의 컨설팅이었다.

이 이야기를 하려면 1997년 외환위기 때로 돌아가야 한다.

IMF가 만들어낸 이상한 채권

1997년 말 우리나라는 외환위기를 맞았다.

IMF 구제금융까지 받아야 했던 국가적 위기였다.

정부 입장에서는 시중에 숨어 있는 지하자금을 끌어내는 것도 급했다.

그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이른바 비실명 특정채권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이것을 흔히

‘묻지마 채권’

이라고 불렀다.

이유가 있었다.

자금출처를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금융실명법상 특정채권 소지인에 대해서는 그 채권의 매입자금 출처 등을 조사하지 않고, 일정한 범위에서 그 채권을 과세자료로 삼아 채권 매입 전에 납세의무가 성립한 조세를 부과하지 않는 강력한 특례가 있었다.

당시 발행된 특정채권에는 여러 종류가 있었다.

고용안정채권,

증권금융채권,

중소기업구조조정채권,

외국환평형기금채권 등이었다.

그중 내가 특히 기억하는 것이 증권금융채권이다.

1998년 9월부터 10월까지 2조 원 규모로 판매됐고, 만기는 5년, 금리는 연 6.5%였다.

고용안정채권은 5년 만기에 연 7.5%, 중소기업구조조정채권은 5년 만기에 연 5.8%였다.

25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이름과 숫자가 기억날 정도로 당시에는 대단한 채권이었다.

처음에는 인기가 없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했다.

당시는 시중금리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던 시절이다.

그런데 5년 동안 돈을 묶어놓고 연 6~7% 정도의 이자를 받으라고 하니 처음부터 사람들이 줄을 설 이유가 없었다.

실제로 고용안정채권도 판매 초기에는 실적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상속세와 증여세에서 엄청난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정부와 국세청도 특정채권의 세제특례에 대한 입장을 내놓았다.

그러자 상황이 달라졌다.

사람들이 채권을 찾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액면가보다 웃돈을 주고 거래하는 프리미엄까지 형성됐다.

왜 그랬을까?

당시 상속·증여세 최고세율은 50%였다.

100억 원을 자녀에게 그냥 증여하는 것과 특정채권을 이용하는 것은 자산가 입장에서 전혀 다른 문제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당시 이 채권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국가가 얼마나 급했으면 이런 채권까지 만들었을까.’

그런데 이 채권에는 중요한 함정이 하나 있었다

특정채권이라고 해서 한 장의 채권으로 몇 번이고 세금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조세특례는 한 번이었다.

국세청도 이 문제를 알고 있었다.

특정채권을 이용해 조세특례를 인정한 경우 세무서에서는 채권 뒷면에 그 사실을 기재해 다시 사용할 수 없도록 관리했다.

이 사실을 모르고 이미 특례를 받은 채권을 사면 어떻게 될까?

내가 기억하는 사례가 하나 있다.

A가 특정채권을 보유하고 있었다.

A는 그 채권을 이용해 이미 자금출처 등에 관한 조세특례를 적용받았다.

그리고 나중에 그 채권을 B에게 팔았다.

B는 이 채권의 특례가 이미 한 번 사용됐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B는 채권을 자녀들에게 넘겼다.

자녀들은 나중에 채권을 상환해 그 돈으로 부동산까지 취득했다.

그러자 세무서에서 문제가 됐다.

담당자가 채권 실물을 확인했다.

그리고 채권 뒷면에는 이미 조세특례를 적용받았다는 흔적이 남아 있었다.

한 번 사용한 특례를 다시 사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실제로 국세청은 이후 유권해석에서도 특정채권에 대한 조세특례는 1회에 한해 인정되고, 이미 조세특례를 받은 특정채권을 다른 사람이 매입한 경우 새로운 매입자에게 다시 특례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명확하게 밝혔다.

당시 이 채권을 잘못 사면 정말 큰일이 날 수 있었다.

명동에서는 프리미엄까지 붙었다

특정채권의 세제혜택이 알려지면서 시장에서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채권에 웃돈이 붙기 시작했다.

이자를 많이 주는 채권도 아니었다.

오히려 당시 시장금리에 비하면 금리는 낮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액면가보다 더 많은 돈을 주고 채권을 샀다.

채권에서 나오는 이자가 아니라 세금에서 얻는 효과가 훨씬 컸기 때문이다.

실제로 훗날 대법원까지 특정채권의 프리미엄 문제가 올라갔다.

대법원은 특정채권의 매입자금에 채권을 사면서 실제 지급한 프리미엄도 포함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만큼 당시 이 채권의 프리미엄 거래가 현실적으로 상당했다는 얘기다.

명동 사채시장에서도 이 채권이 돌아다녔다.

위조채권 이야기도 들렸다.

거액의 돈이 오가는 시장이었으니 사고가 없을 수 없었다.

국세청에 있을 때 나는 이 채권을 보면서도 참 이상한 제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몇 년 뒤 국세청을 떠나 증권회사로 옮긴 후,

나는 이 채권을 다시 만나게 됐다.

이번에는 조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컨설팅하는 사람으로 만났다.

내가 만든 ‘설계도’

고객은 엄청난 자산가였다.

이해하기 쉽게 숫자를 단순화해서 설명해보자.

아버지가 500억 원짜리 건물을 가지고 있다고 하자.

나는 당시 세법과 금융구조를 놓고 전체 그림을 그렸다.

먼저 아버지 소유 건물을 담보로 금융기관에서 최대한 대출을 받는다.

그 대출자금으로 특정채권을 매입한다.

그리고 그 특정채권을 아들에게 넘긴다.

당시 특정채권에는 증여세와 자금출처에 관한 매우 강력한 특례가 있었다.

다음 단계가 중요했다.

아버지가 건물을 아들에게 부담부증여한다.

아들은 건물과 함께 금융기관 채무도 인수한다.

건물 평가액에 가까운 규모의 채무가 적법하게 인정된다면 증여재산가액은 크게 줄어든다.

구조에 따라서는 순수 증여가액을 거의 남기지 않는 설계도 가능했다.

물론 부담부증여에서 아들이 인수한 채무 부분은 아버지가 그 부분을 양도한 것으로 보므로 아버지에게 양도소득세 문제가 발생한다.

여기까지가 건물이다.

그런데 아들에게는 앞에서 받은 특정채권이 있다.

아들은 그 채권을 만기에 상환한다.

그러면 현금이 생긴다.

그 돈으로 자신이 인수한 건물의 금융기관 대출을 상환한다.

구조만 놓고 보면 이랬다.

건물 → 대출

대출금 → 특정채권

특정채권 → 아들

건물 + 채무 → 아들에게 부담부증여

특정채권 상환 → 현금

현금 → 아들이 인수한 건물대출 상환

한 바퀴를 돌고 나면,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건물은 아들에게 넘어가고,

건물에 붙어 있던 채무도 사라지는 구조였다.

당시 존재했던 특정채권의 특례와 부담부증여를 한 구조 안에서 연결한 것이다.

그때는 스스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당시 나는 국세청에서 나와 증권회사에서 자산가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국세청에서 배운 세법,

조사 현장에서 익힌 자금흐름,

증권회사에서 배운 금융,

부담부증여,

특정채권.

내가 가지고 있던 지식을 전부 한꺼번에 집어넣어 만든 구조였다.

처음 그림을 완성했을 때는 나도 속으로 생각했다.

‘이건 정말 잘 만들었다.’

실제로 세법을 몰라서는 만들 수 없는 구조였다.

금융을 몰라도 만들기 어려웠다.

자금출처조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몰라도 만들기 어려웠다.

그때까지 내가 배웠던 것들이 하나의 그림으로 연결된 컨설팅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이것을

내 생애 최고의 컨설팅 중 하나

라고 기억한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다시 생각해보면 생각이 조금 달라진다.

최고의 컨설팅이면서 최악의 컨설팅

특정채권은 정상적인 세제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강력한 특례를 가지고 있었다.

국가적 외환위기라는 아주 특수한 상황에서 만들어진 제도였다.

그 틈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결국 돈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거액의 부동산이 있고,

그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받을 수 있고,

수십억, 수백억 원의 채권을 살 수 있는 사람들이다.

나는 당시 존재했던 법과 제도 안에서 가장 유리한 방법을 찾아준 것이다.

불법적인 방법을 만든 것은 아니다.

그게 내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이런 제도가 좋은 제도였을까.’

외환위기라는 국가적 위기를 넘기기 위해 지하자금을 끌어내야 했다는 정부의 사정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엄청난 세제혜택이 특정한 사람들에게 돌아갔다.

그래서 내게 이 컨설팅은 묘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내가 알고 있던 세법과 금융지식을 가장 잘 활용했던 컨설팅.

그래서 최고의 컨설팅.

하지만 다시는 이런 제도를 이용한 컨설팅을 하고 싶지 않은 기억.

그래서 동시에 최악의 컨설팅이다.

그 채권은 사라졌지만 아직도 기억난다

그때 발행된 특정채권은 이제 역사 속의 금융상품이 됐다.

그런데 25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나는 이름과 금리를 기억한다.

고용안정채권.

증권금융채권.

중소기업구조조정채권.

그리고 채권 뒷면에 찍혀 있던 조세특례의 흔적까지.

세법을 오래 하다 보면 가끔 이런 제도를 만난다.

평상시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제도가 경제위기나 사회적 상황 때문에 갑자기 만들어지는 경우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 제도를 가장 빨리 이해한 사람들이 움직인다.

묻지마 채권.

내게는 한 시대의 위기와 세금, 그리고 내가 했던 컨설팅을 함께 떠올리게 하는 이름이다.

내 생애 최고의, 그러나 최악의 컨설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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