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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SON 03 · 상속세 블로그

9화. 유증과 사인증여

2026.09.22·약 7분

“제가 죽은 뒤에 이 재산을 저 사람에게 주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살아 있을 때 미리 주는 증여도 있지만, 사망한 뒤 재산을 넘겨주는 방법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유증과 사인증여다.

둘 다 사망 후 재산이 이전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법적인 성격은 상당히 다르다.

평생 함께 일한 직원에게 재산을 주고 싶다

어느 날 상담실에 들어가 보니 점잖은 노신사 한 분이 기다리고 있었다.

젊어서부터 인쇄소에서 고생하다가 직접 출판사를 차렸고, 대학로 근처에서 제법 이름 있는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 분이었다.

아들과 딸이 하나씩 있었다.

그런데 고민이 있었다.

두 자녀 모두 출판사를 물려받을 생각이 없었다.

아버지가 평생 일군 출판업에는 별 관심이 없고, 출판사 건물을 상속받아 무엇을 할지만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노신사가 한숨을 쉬었다.

“마음 같아서는 죽기 전에 재산을 전부 자선단체나 학교에 기부하고 싶어요.”

그러면서도 결국 자식들이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보니 진짜 고민은 따로 있었다.

“그 직원은 우리 애들이 안 챙겨줄 겁니다”

평생 자신의 곁에서 묵묵히 일해온 직원이 한 명 있었다.

출판사가 어려울 때도 떠나지 않았다.

좋을 때나 힘들 때나 오랫동안 함께 일한 사람이었다.

노신사는 자신이 죽은 뒤 그 직원에게 출판사업을 맡기고 싶어 했다.

그리고 재산 일부도 평생 함께 일한 데 대한 퇴직금 같은 의미로 주고 싶다고 했다.

문제는 자녀들이었다.

자신이 죽고 그냥 상속이 시작되면 자녀들이 그 직원을 챙겨줄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고 지금 재산을 미리 증여하자니 그것도 마음에 걸렸다.

나는 물었다.

“직원분에게 이런 말씀은 해보셨습니까?”

“했죠. 재산도 조금 주고 출판사도 맡기겠다고 했는데 싫다고 합니다.”

“왜요?”

“자기는 월급 받은 것으로 충분하답니다.”

요즘 보기 드문 직원이었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증여는 혼자 할 수 없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증여는 주는 사람이

“내 재산을 당신에게 주겠다.”

고 말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받는 사람도

“받겠습니다.”

라고 해야 한다.

민법상 증여는 한쪽이 자기 재산을 무상으로 주겠다는 의사를 표시하고 상대방이 이를 승낙함으로써 성립하는 계약이다.

따라서 노신사가 아무리 재산을 주고 싶어도 직원이 끝까지 받지 않겠다고 하면 일반적인 증여계약은 성립하기 어렵다.

그러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대표적인 것이 사인증여와 유증이다.

사인증여는 ‘죽으면 주겠다’는 계약이다

사인증여도 기본적으로 증여계약이다.

다만 효력이 증여자의 사망으로 발생한다는 점이 다르다.

예를 들어 노신사가 직원에게 말한다.

“내가 죽으면 이 건물을 당신에게 주겠소.”

직원이 말한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두 사람이 이런 내용으로 증여계약을 체결했다면 사망을 원인으로 효력이 발생하도록 하는 사인증여를 생각해볼 수 있다.

민법 제562조는 증여자의 사망으로 효력이 생길 증여에는 유증에 관한 규정을 준용하도록 하고 있다.

핵심은 계약이라는 점이다.

일반적인 증여와 마찬가지로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사이에 의사의 합치가 필요하다.

따라서 이 사례처럼 직원이 생전에

“저는 받지 않겠습니다.”

라고 끝까지 거절하고 있다면 사인증여도 현실적인 방법이 되기 어렵다.

그렇다면 유증은 다르다

유증은 사인증여와 출발점부터 다르다.

사인증여가 계약이라면 유증은 유언자의 단독행위다.

노신사가 유언을 통해

“내가 죽으면 이 건물은 이 직원에게 준다.”

라고 정해놓는 것이다.

유언을 할 때 직원이 옆에서

“받겠습니다.”

라고 동의할 필요는 없다.

유언자가 법에서 정한 방식에 따라 자신의 의사를 남기면 된다.

그리고 유언은 유언자가 사망하면서 효력이 발생한다.

물론 직원이 무조건 재산을 받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민법은 유증을 받을 사람이 유언자의 사망 후 유증을 승인하거나 포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정확하게 표현하면,

유증은 유언을 할 당시 수증자의 사전 동의가 필요하지 않다.

이 점이 사인증여와 크게 다르다.

사업까지 계속하게 만들 수 있을까?

노신사의 고민은 재산만 주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평생 일군 출판사가 없어지는 것이 싫었다.

나는 이런 방법도 설명했다.

부담있는 유증이다.

예를 들어 유언에 이런 취지의 내용을 넣는 것이다.

“이 재산을 직원에게 유증하되 출판사업을 계속 운영하는 것을 부담으로 한다.”

민법은 부담있는 유증을 인정하고 있다.

부담있는 유증을 받은 사람은 유증받은 재산의 가액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그 부담을 이행할 책임을 진다.

따라서 단순히 재산만 넘기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의무를 함께 부담시키는 구조도 가능하다.

다만 실제 유언을 작성할 때는 무엇을 어느 범위까지 부담시키는지 명확하게 정해야 한다.

‘출판업을 계속하라’는 문구 하나만 적는 것보다 기간, 대상 사업, 재산과 사업의 관계 등을 법률전문가와 구체적으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

사인증여와 유증은 무엇이 다를까?

두 제도의 차이를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렇다.

사인증여

증여계약이다.

따라서 증여자와 수증자의 합의가 필요하다.

다만 증여자의 사망으로 효력이 발생한다.

그리고 민법상 유증에 관한 규정이 준용된다.

유증

유언에 의한 단독행위다.

유언을 할 때 수증자의 동의가 필요하지 않다.

법에서 정한 유언방식을 갖춰야 하고 유언자가 사망하면 효력이 발생한다.

수증자는 사망 후 유증을 승인하거나 포기할 수 있다.

부담있는 유증도 가능하다.

이 노신사에게는 유증이 더 현실적이었다

이상의 내용을 설명하고 나는 의견을 말했다.

“현재 상황이라면 사인증여보다는 유증을 검토하시는 것이 현실적으로 보입니다.”

이유는 간단했다.

직원이 지금 재산을 받겠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인증여는 계약이므로 직원의 동의가 필요하다.

반면 유증은 노신사가 자신의 의사에 따라 유언을 남길 수 있다.

더구나 단순히 재산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 출판사업을 계속 이어가기를 원한다면 부담있는 유증도 함께 검토할 수 있다.

노신사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평생 일군 출판사를 없애지 않고,

평생 함께 일한 직원에게 그 사업을 맡기고,

재산 일부도 남겨줄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세법에서는 둘 다 ‘상속’에 들어간다

민법에서는 유증과 사인증여의 법적 성격이 다르다.

하나는 유언에 의한 단독행위이고,

다른 하나는 사망으로 효력이 발생하는 증여계약이다.

그런데 세법으로 넘어가면 재미있는 부분이 있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은 ‘상속’의 범위에 유증과 사인증여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즉, 이름에 ‘증여’가 들어간다고 해서 사인증여에 일반적인 증여세가 과세되는 것으로 단순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사망을 원인으로 재산이 이전되는 유증과 사인증여는 상속세 문제로 연결된다.

그래서 재산을 물려주는 방법을 검토할 때는 단순히

“생전에 주느냐, 죽은 뒤에 주느냐”

만 볼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 줄 것인지,

상대방의 동의가 필요한지,

재산만 줄 것인지 일정한 의무까지 함께 맡길 것인지,

상속인들과의 분쟁 가능성은 없는지까지 같이 봐야 한다.

노신사는 상담을 마치고 만족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나는 가끔 유증과 사인증여를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사인증여와 유증이라고 쓰고, 세법에서는 상속이라고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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