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를 활용한 상속재산 분할
상속재산을 어떻게 나누느냐에 따라 앞으로 부담할 상속세까지 달라질 수 있다.
특히 배우자가 있는 상속이라면 이번 상속만 볼 것이 아니라 배우자의 다음 상속까지 함께 봐야 한다.
증권회사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상담실에 들어가 보니 곱게 나이 드신 할머니 한 분과 40대 초반 정도의 남자가 차를 마시고 있었다.
상담 내용을 들어보니 얼마 전 할아버지가 오랜 병환 끝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상속인은 배우자와 아들 둘이었다.
상속재산은 건물 100억 원과 현금 50억 원.
총 150억 원 정도였다.
할머니는 오랜 병환으로 고생하던 남편이 이제야 평온해진 것 같다며 오히려 담담하고 밝은 모습이었다.
장남과 함께 상속세 문제를 의논하러 왔다고 했다.
나는 상속 상담을 할 때 늘 묻는 질문부터 했다.
“상속재산 협의분할은 어느 정도 의논하셨습니까?”
의외로 아주 평화롭게 정리가 끝난 상태였다.
“100억짜리 건물은 어머니가 받기로 했습니다”
아들 둘은 효자였다.
어머니가 남은 인생을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100억 원짜리 건물을 어머니에게 드리기로 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건물에서 나오는 임대료를 받아 생활하고, 현금 50억 원은 두 아들이 각각 25억 원씩 나눠 갖기로 했다.
할머니는 두 아들이 대견한 듯 장남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누가 들어도 아름다운 재산분할이었다.
그런데 세금 측면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었다.
나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
“어머니, 그렇게 하시면 나중에 이 100억짜리 건물이 거의 세금 재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두 사람의 얼굴이 동시에 굳었다.
“왜요?”
이런 사례는 내가 좋아하는 유형이다.
복잡한 세법을 잔뜩 적용하는 문제가 아니라 생각을 반대로 해보면 답이 보이는 경우이기 때문이다.
이번 상속만 보면 안 된다
나는 종이에 숫자를 적으며 설명했다.
현재 상속재산은 150억 원이다.
배우자가 있기 때문에 배우자상속공제를 적용할 수 있고, 그 밖의 공제와 채무 등이 있다면 함께 반영한다.
물론 실제 상속세는 배우자의 법정상속분, 실제 상속금액, 채무와 임대보증금, 각종 공제 등을 모두 확인한 뒤 정확하게 계산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정확한 세액보다 재산이 어디에 남느냐였다.
처음 계획대로라면 어머니가 100억 원짜리 건물을 상속받는다.
아들 둘은 현금 50억 원을 나눠 갖는다.
이번 상속세는 현금을 이용해 납부할 수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어머니가 오래 건강하게 사시다가 돌아가셨다고 해보자.
그때 어머니에게 무엇이 남아 있을까?
100억 원짜리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러면 다시 어머니의 상속이 시작된다.
이번에는 배우자가 없다.
어머니가 보유한 건물이 다시 상속세 과세대상이 된다.
더구나 재산 대부분이 부동산이라면 세금을 낼 현금도 부족할 수 있다.
대출을 받거나, 연부연납 등 별도의 납부대책까지 고민해야 할 수 있다.
물론 첫 번째 상속 후 일정 기간 안에 다시 상속이 발생하면 단기 재상속에 대한 세액공제 제도가 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제도가 아니다.
처음 재산을 어떻게 나누느냐에 따라 두 번째 상속의 모습 자체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두 사람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예상했던 질문이 나왔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대답은 간단했다.
“반대로 하시면 됩니다.”
건물은 아들이, 현금은 어머니가
내가 제안한 방법은 재산분할 순서를 바꾸는 것이었다.
100억 원짜리 건물은 두 아들이 각각 2분의 1씩 상속받는다.
현금 50억 원은 어머니가 상속받는다.
그리고 배우자상속공제를 적용한다.
어머니가 상속받은 현금 중 일부를 이번 상속세 납부재원으로 활용한다.
상속세에는 공동상속인의 연대납세의무가 있기 때문에 실제 세액과 각 상속인이 받은 재산 등을 고려해 납부방법을 설계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구조가 완전히 달라진다.
아들들은 100억 원짜리 건물을 처음 상속 때부터 보유하게 된다.
어머니는 현금을 상속받아 생활비와 상속세 납부 등에 사용한다.
아들들이 효자라고 했으니 이후 어머니의 생활비도 충분히 부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시간이 지나 어머니에게 다시 상속이 발생했을 때 남아 있는 재산의 규모를 크게 줄일 수 있다.
100억 원짜리 건물이 어머니를 거쳐 다시 아들에게 상속되는 구조를 처음부터 만들지 않는 것이다.
두 사람은 그제야 다시 미소를 지었다.
나도 조금 거드름을 피웠다.
“제가 차 한잔 마시고 100억짜리 건물 하나 구해드린 겁니다.”
상담은 그렇게 끝났다.
상속재산분할은 이번 세금만 보고 결정하면 안 된다
이 사례에서 중요한 것은 ‘건물은 무조건 자녀가 받고 현금은 배우자가 받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가족마다 재산구성과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배우자의 나이와 건강상태도 다르다.
생활비가 얼마나 필요한지도 다르고, 임대소득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자녀와의 관계도 고려해야 한다.
배우자가 재산을 충분히 확보해야 하는 가족도 당연히 있다.
따라서 모든 상속에서 같은 방법을 적용할 수는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상속재산분할을 결정할 때 이번 상속세만 계산해서는 안 된다.
배우자가 어떤 재산을 얼마나 상속받을 것인지,
그 재산이 앞으로 어떻게 사용될 것인지,
향후 배우자에게 다시 상속이 발생하면 어떤 재산이 남게 되는지까지 함께 봐야 한다.
특히 고액자산가라면 첫 번째 상속과 두 번째 상속을 하나의 흐름으로 계산해볼 필요가 있다.
세금은 가끔 거꾸로 생각하면 답이 보인다.
당장 공제를 많이 받는 방법만 찾는 것이 아니라,
누가 어떤 재산을 상속받아야 가족 전체의 재산이 효율적으로 남을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상속재산분할이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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