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 조사에서 조사관이 제일 먼저 하는 일 세 가지
상속세 조사를 배정받으면 조사관은 무엇부터 할까?
바로 금융조사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실제로는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내가 서울청 조사3국에서 상속세 조사를 할 때는 사건을 배정받으면 크게 세 가지부터 시작했다.
가계도를 그리고, 상속세 신고서를 반복해서 읽고, 금융조회를 준비하는 일이었다.
상속세 조사는 단순히 사망한 사람의 재산만 확인하는 조사가 아니다.
피상속인이 평생 어떻게 재산을 형성했고, 그 재산이 가족에게 어떤 방식으로 이전됐는지를 따라가는 조사에 가깝다.
그래서 처음에 이 세 가지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조사의 방향이 상당 부분 결정된다.
1. 먼저 집안의 가계도를 그린다
이 부분은 조사관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사건을 배정받으면 무조건 가계도부터 그리고 시작했다.
가운데 피상속인을 놓고 배우자, 자녀, 자녀의 배우자, 손주 등 가족관계를 하나씩 그려 넣었다.
그리고 피상속인과 상속인들의 직업이나 사회적 지위, 특별히 문제가 될 만한 사항이 있는지도 함께 살펴봤다.
내가 조사했던 사건 중에는 유명 정치인이나 기업가 등 사회적으로 알려진 사람들이 포함된 경우도 있었다.
유명인이나 사회적으로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의 세무조사는 조사내용 자체가 사회적 이슈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사건보다 더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가계도를 그리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상속세 조사를 하다 보면 신고서에 없던 사람들이 계속 등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금융거래를 확인하다가 피상속인의 돈이 손주나 며느리에게 이체된 사실이 나올 수 있다.
수표를 추적했는데 수표 뒷면에 이서한 사람이 사위나 다른 친척인 경우도 있다.
처음 보는 이름이 금융거래에 등장했을 때 가계도가 있으면 그 사람이 피상속인과 어떤 관계인지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이 사람은 며느리구나.’
‘이 사람은 손주구나.’
‘이 사람은 사위 쪽 친척이구나.’
관계가 확인되면 그다음부터는 돈이 왜 그 사람에게 갔는지를 보게 된다.
정상적인 거래인지,
생활비나 교육비인지,
빌려준 돈인지,
아니면 과거에 증여한 돈인지 검토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상속세 조사를 할 때 가계도는 단순한 가족관계도가 아니었다.
금융조사를 할 때 등장하는 사람들의 관계를 빠르게 파악하기 위한 조사 지도에 가까웠다.
2. 상속세 신고서를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읽는다
두 번째는 상속세 신고서를 검토하는 일이다.
한 번 읽고 끝내지 않는다.
처음에는 전체적인 재산 규모와 신고내용을 보고, 다시 읽으면서 재산의 형성과 이동을 살펴본다.
두세 번 정도 반복해서 읽다 보면 피상속인이 어떤 방식으로 재산을 형성한 사람인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금융자산을 많이 보유한 사람인지,
부동산 중심으로 재산을 형성한 사람인지,
사업을 통해 돈을 번 사람인지,
주식이나 다른 투자자산의 비중이 큰 사람인지가 보인다.
이걸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있다.
사람마다 재산을 만드는 방식이 다르면 조사할 곳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부동산이 많은 사람이라면 부동산의 취득과 처분, 평가문제를 자세히 보게 된다.
금융자산이 많은 사람이라면 계좌 흐름과 과거 자금이동이 중요해진다.
사업가라면 법인과 개인 간 자금거래도 살펴봐야 한다.
그러면서 이번 사건의 핵심이 무엇인지 찾아간다.
자산평가 문제인지,
차명계좌 문제인지,
부동산 명의신탁 문제인지,
과거 가족에게 이전한 재산이 있는지,
신고하지 않은 상속재산이 있는지 등을 하나씩 살펴본다.
그래서 조사기간 동안에도 신고서를 계속 다시 읽게 된다.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숫자가 금융조사를 한 뒤 다시 보면 전혀 다르게 보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상속세 신고서는 조사의 출발점이지만, 조사 마지막까지 계속 들여다보는 자료이기도 하다.
3. 금융조회를 준비한다
가계도를 그리고 신고서를 어느 정도 파악하면 본격적으로 금융거래를 확인하게 된다.
상속세 조사에서 금융조사가 중요한 이유는 간단하다.
상속재산만 보는 것이 아니라 피상속인이 생전에 가족에게 이전한 재산까지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상속세 과세가액을 계산할 때는 피상속인이 사망하기 전 일정 기간 안에 상속인이나 상속인이 아닌 사람에게 증여한 재산도 법에서 정한 범위에 따라 상속세 과세가액에 가산한다.
현재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 상속인에게 증여한 재산은 상속개시 전 10년, 상속인이 아닌 사람에게 증여한 재산은 5년 이내의 것이 원칙적인 합산대상이다.
그래서 금융거래를 보지 않고는 제대로 된 상속세 조사가 어렵다.
내가 조사국에서 근무할 당시에는 여러 금융기관에 금융거래정보를 요구하는 일괄조회 방식으로 금융조사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은행만 보는 것이 아니다.
증권회사, 보험회사, 저축은행, 지역 농·수·축협, 새마을금고, 우체국 등 피상속인과 상속인의 금융재산이나 거래를 확인할 필요가 있는 금융기관이 대상이 될 수 있다.
최근에는 금융환경 자체가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인터넷은행과 각종 전자금융서비스가 등장했고 가상자산까지 재산의 영역에 들어왔다.
따라서 지금의 금융조사를 과거의 ‘은행계좌 조사’ 정도로만 이해하면 안 된다.
상속인의 배우자와 자녀까지 처음부터 모두 조사할까?
이 부분도 많이 오해한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사망하고 상속인이 어머니와 3남매라고 해보자.
상속세 조사에서 우선적으로 확인해야 할 사람은 피상속인과 상속인들이다.
그렇다고 3남매의 배우자와 자녀가 아무 관계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조사를 하다가 피상속인의 자금이 며느리나 사위, 손주에게 흘러간 사실이 확인되면 그 거래는 당연히 검토대상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처음에 가계도를 그릴 때 상속인만 그리지 않고 배우자와 자녀 등 주변 가족까지 함께 표시해두는 것이다.
금융거래를 추적하다 보면 언제 누가 등장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금융조회를 하면 당사자는 바로 알까?
증권회사에서 근무할 때 있었던 일이다.
어떤 고객이 은행에서 받은 공문 하나를 들고 찾아왔다.
“이게 무슨 내용입니까?”
확인해보니 과거 국세청이 고객의 금융거래정보를 조회했다는 사실을 금융회사가 알려주는 내용이었다.
고객은 국세청이 자신의 금융거래를 조회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게 된 것이다.
금융거래정보는 아무렇게나 조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등에 따라 법적 근거와 요건을 갖추어 금융회사에 금융거래정보를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금융회사가 거래정보를 제공한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명의인에게 그 사실을 통보하는 제도가 있다.
다만 조사 진행을 방해하거나 과도하게 지연시킬 우려가 있는 등 법에서 정한 사유가 있으면 일정 기간 통보를 유예할 수 있다.
그래서 세무조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자신에 대한 금융조회가 이루어진 사실을 모르다가 나중에 금융회사로부터 통보를 받고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내가 증권회사에서 만났던 고객도 그런 경우였다.
상속세 조사에서 금융조사가 중요한 이유
상속세 조사를 처음 경험하는 사람들은 보통 이렇게 생각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아버지 명의로 남아 있는 재산만 조사하겠지.’
그렇지 않다.
조사관 입장에서는 현재 남아 있는 상속재산만큼이나 그 전에 어디로 빠져나간 재산이 있는지가 중요하다.
과거에 자녀에게 준 돈은 없는지,
손주에게 흘러간 자금은 없는지,
부동산을 사주면서 대신 지급한 돈은 없는지,
다른 사람 명의로 관리하던 금융재산은 없는지,
거액의 현금이나 수표가 어디로 갔는지를 살펴본다.
그러다 보니 상속세 조사를 하면서 증여세 문제가 함께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조사국에서 수많은 상속세 조사를 하면서 느낀 것도 이것이었다.
상속세 조사는 사망한 날의 재산만 보는 조사가 아니다.
한 사람이 평생 형성한 재산이 마지막에 어디에 남아 있고, 그 전에 가족에게 어떻게 흘러갔는지를 거꾸로 따라가는 조사다.
그래서 나는 상속세 조사를 설명할 때 종종 이렇게 말한다.
상속세 조사라고 쓰고, 증여세 조사라고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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