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차
SEASON 03 · 상속세 블로그

11화. 태아도 상속을 받을 수 있을까?

2026.09.28·약 12분

중년의 부부가 침통한 표정으로 찾아왔다.

아들이 둘, 며느리도 둘이었다.

부부의 재산은 약 200억 원 정도였고, 1년 전쯤 그중 절반인 100억 원을 두 아들에게 각각 50억 원씩 증여했다.

그런데 증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둘째 아들에게 변고가 생겼다.

병원에서 골수암 판정을 받았고, 길어야 6개월 정도 남았다는 진단을 받은 것이다.

가족들은 모두 충격에 빠졌다.

너무 똑똑하고 착한 아들이었다. 대기업에 입사해 부모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자식이기도 했다.

게다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며느리가 임신 3개월이라는 경사까지 겹친 상황에서 날아든 비보였다.

부모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로부터 약 5개월 뒤, 둘째 며느리가 찾아왔다.

산달을 한 달 정도 앞두고 있었고, 남편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며느리가 말했다.

“오빠가 죽기 전에 우리 아기를 보고 싶어해요.”

남편이 죽기 전에 아기를 보여주고 싶다며 예정일보다 일찍 제왕절개로 출산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시부모는 그 말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

감격과 안쓰러움, 미안함이 뒤섞여 있었다.

앞으로 혼자 아이를 키워야 할 며느리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고, 친딸처럼 아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한 달 뒤 며느리는 무사히 아들을 출산했다.

그리고 남편은 아이가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여기까지가 부부에게 들은 이야기였다.

그런데 나는 이야기를 듣는 동안 한 가지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혹시 지금 며느님은 어떻게 지내세요?”

시어머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지금은 연락이 안 돼요.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가서 자기 친정에 가 있는 것 같아요.”

나는 다시 물었다.

“어머님, 지금부터 제가 드리는 말씀은 혹시 모르니 참고로 알아두시라는 뜻입니다. 아드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며느님과의 사이는 어떠셨나요?”

“우리는 잘해준다고 했는데 가끔 사소한 일로 부딪히기도 했어요. 둘째가 중재하고 좀 시끄러웠던 적도 있었죠. 증여를 50억이나 해줬는데 고마워하는 눈치도 아닌 것 같아서 괘씸하기도 했어요. 그래도 아기를 수술해서라도 일찍 낳겠다고 하니 마음이 다 풀렸는데…….”

그 이야기를 듣는데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만약 둘째 며느리가 아기를 낳기 전에 남편이 사망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반대로 지금처럼 아기가 먼저 태어난 뒤 남편이 사망하면 상속관계는 어떻게 될까?


아기가 먼저 태어나면 상속재산 50억은 어떻게 될까

지금 사례에서는 아기가 먼저 태어났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아버지가 사망했다.

이 경우 상속관계는 명확하다.

아들은 피상속인의 직계비속이므로 제1순위 상속인이고, 배우자인 며느리는 아들과 공동상속인이 된다. (증여 받을 때 낸 증여세는 고려하지 않고 50억 기준으로 설명)

배우자의 법정상속분은 직계비속의 상속분에 50%를 가산한다.

따라서 다른 재산이나 채무 등을 고려하지 않고 아들이 증여 받았던 50억 원만 놓고 단순하게 계산하면 법정상속분은 다음과 같다.

배우자 1.5, 아들 1.

따라서,

며느리 30억 원, 손자 20억 원.

시부모에게 돌아가는 상속분은 없다.

직계비속인 손자가 제1순위 상속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순서가 반대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남편이 먼저 사망하고 그때 아이가 아직 뱃속에 있었다면 말이다.

여기서 민법의 재미있는 문제가 하나 생긴다.

태아도 상속을 받을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받을 수 있다.

민법 제1000조 제3항은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태아는 상속순위에 관하여는 이미 출생한 것으로 본다.”

따라서 상속에서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도 보호한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미 출생한 것으로 본다’는 말만 보면 태아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당장 상속재산을 취득하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

우리 대법원의 해석은 그렇지 않다.

대법원은 태아가 살아서 출생한 경우에 비로소 출생 시기를 상속개시 당시까지 소급하여 그때 이미 출생한 것처럼 보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른바 정지조건설, 또는 인격소급설이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태아로 있는 동안에는 현실적으로 권리능력을 행사할 수 없지만, 살아서 태어나면 아버지가 사망한 그때부터 이미 태어나 있었던 것으로 소급해서 처리한다.

이 차이가 실제 상속에서는 상당히 재미있는 결과를 만든다.

출산 전에 남편이 사망했다면

이 사례에서 남편의 재산을 50억 원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아기가 아직 태어나기 전에 남편이 사망했다고 해보자.

최종적으로 태아가 살아서 출생하면 법정상속분은 앞에서 계산한 것과 같다.

배우자 1.5, 자녀 1.

즉,

며느리 30억 원, 아기 20억 원이다.

최종 상속분 자체는 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태아가 아직 출생하기 전에는 문제가 생긴다.

대법원이 취하는 정지조건설에 따르면 태아는 아직 현실적인 권리능력을 취득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태아가 살아서 태어날 것인지, 사산될 것인지 확정되기 전까지는 태아에게 최종적으로 귀속될 상속분을 현실적으로 태아가 취득하여 행사할 수 없다.

그 기간에는 후순위 상속인이 등장한다.

이 사례에서는 둘째 아들의 부모가 모두 생존해 있다.

따라서 태아가 출생하기 전 단계에서는 후순위인 직계존속, 즉 부모에게 그 부분이 일단 귀속되는 구조가 된다.

배우자의 몫은 30억 원이다.

그리고 나머지 20억 원은 부모가 동순위 직계존속이므로 각각 10억 원씩 나누게 된다.

만약 교과서 사례처럼 아버지는 이미 사망하고 어머니, 즉 할머니만 생존해 있다면 그 20억 원은 할머니가 일단 전부 취득하는 구조가 된다.

그런데 이후 태아가 무사히 살아서 출생하면 상황이 바뀐다.

태아의 상속권이 아버지가 사망한 시점으로 소급하기 때문이다.

결국 부모가 일단 취득했던 20억 원은 태아의 상속분이 되고, 이미 이루어진 상속관계도 그에 맞게 다시 정리해야 한다.

최종 결과는 다시 며느리 30억 원, 손자 20억 원이다.

반대로 태아가 살아서 출생하지 못하면 태아의 상속권은 최종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이것이 태아의 상속에서 정지조건설이 중요한 이유다.

그렇다면 며느리는 왜 출산을 서둘렀을까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당시 며느리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오빠가 죽기 전에 우리 아기를 보고 싶어해요.”

물론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죽음을 앞둔 남편에게 자기 아이를 보여주고 싶었던 아내의 마음이었을 수 있다.

실제로 그랬을 가능성이 가장 자연스럽다.

그런데 상담을 하다 보니 직업상 다른 가능성까지 생각하게 됐다.

남편이 사망하기 전에 아이가 태어나면 상속관계는 처음부터 명확하다.

며느리 30억 원.

아들 20억 원.

시부모가 그 상속재산에 관여할 여지가 없다.

반면 남편이 먼저 사망하고 아이가 아직 태아 상태라면 최종적인 상속분은 같더라도, 아이가 살아서 출생하기 전까지는 후순위 상속인인 시부모가 개입하는 중간 과정이 생긴다.

그래서 당시 상담을 하면서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걸 알고 출산을 서두른 건가?’

물론 확인할 방법은 없다.

당사자에게 그런 의도가 있었다고 단정해서도 안 된다.

다만 민법을 알고 이 사례를 보면, 출산 전 사망과 출산 후 사망의 차이가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나는 부부에게 말했다.

“어머니, 그런데 아직 끝이 아닌 것 같습니다.”

“예? 그게 무슨 말이죠?”

“이 상태에서 나중에 두 분이 모두 돌아가신다고 가정해보죠.”

부부에게는 아직 약 100억 원의 재산이 남아 있었다.

아들이 둘이었다.

다른 사정이 없다고 단순화하면 큰아들 쪽 50억 원, 작은아들 쪽 50억 원의 상속분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작은아들은 이미 사망했다.

여기서부터는 앞의 상속과 법적 성격이 달라진다.

앞에서 손자가 자기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는 것은 본위상속이다.

하지만 앞으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사망할 때 이미 사망한 둘째 아들을 대신해 그 가족이 상속받는 것은 대습상속이다.

민법 제1001조는 상속인이 될 직계비속이 상속개시 전에 사망한 경우 그 사람의 직계비속이 그 순위에 갈음하여 상속인이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민법 제1003조 제2항에 따라 먼저 사망한 아들의 배우자도 대습상속인인 자녀와 공동상속인이 된다.

따라서 둘째 아들이 살아 있었다면 받을 50억 원 상당의 몫을 며느리와 손자가 함께 대습상속하는 구조가 된다.

그 50억 원을 다시 법정상속분으로 나누면,

배우자인 며느리 1.5,

손자 1.

즉,

며느리 30억 원, 손자 20억 원이다.

큰아들 50억 원까지 합치면 전체 100억 원은 단순 계산상

큰아들 50억 원
둘째 며느리 30억 원
손자 20억 원

의 구조가 된다.

아들이 먼저 죽었다고 해서 그 집안의 상속권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럼 큰아들에게 전부 주면 안 됩니까?”

이런 상황에서 부모 입장에서는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

‘남은 재산을 그냥 큰아들에게 전부 주면 안 될까?’

유언을 통해 큰아들에게 재산을 상속시키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유류분 문제가 있다.

현행 민법상 직계비속과 배우자의 유류분은 각각 자신의 법정상속분의 2분의 1이다.

앞의 100억 원 사례를 그대로 단순화하면 둘째 아들 쪽의 법정상속분은 전체의 50%, 즉 50억 원이다.

그 안에서 며느리의 법정상속분은 30억 원, 손자의 법정상속분은 20억 원이다.

따라서 다른 증여나 특별수익, 기여분 등 유류분 계산에 영향을 주는 요소가 전혀 없다고 단순화하면,

며느리의 유류분은 15억 원,

손자의 유류분은 10억 원이다.

합계 25억 원이다.

그래서 당시에는 부모에게 최소한 유언을 포함한 상속설계를 미리 검토해둘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이런 말도 했다.

“그건 아들의 핏줄을 키우는 값이라고 생각하시죠.”

상담하면서 마음이 편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아들을 먼저 보내야 했던 부모에게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자신의 상속 문제까지 이야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속은 감정과 법률이 항상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며느리가 재혼하면 어떻게 될까?

여기서 하나가 더 있다.

남편이 먼저 사망한 뒤 며느리가 재혼하면 어떻게 될까?

민법은 부부 중 한 사람이 사망한 뒤 생존 배우자가 재혼하면 사망한 배우자의 혈족과 맺어진 인척관계가 종료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며느리가 재혼하면 시부모와의 인척관계가 종료되고, 이후 시부모의 상속에서 며느리가 배우자 대습상속인으로 들어가는 문제도 달라진다.

그러나 손자의 지위는 다르다.

손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혈족이다.

어머니가 재혼한다고 해서 손자와 조부모의 혈족관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둘째 아들의 대습상속분은 손자가 이어받게 된다.

과거에는 이를 두고 흔히 “며느리가 호적에서 빠진다”는 식으로 표현하기도 했지만, 현재는 호적제도가 폐지됐으므로 정확하게는 재혼으로 시부모와 며느리의 인척관계가 종료된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

태아도 상속을 받을 수 있다

이 사례의 결론은 분명하다.

태아도 상속을 받을 수 있다.

민법은 태아를 상속순위에 관하여 이미 출생한 것으로 본다.

다만 우리 대법원은 태아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현실적으로 권리능력을 행사한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출생하면 그 효과를 상속개시 당시까지 소급시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래서 출산 전 아버지가 사망한 경우와 출산 후 아버지가 사망한 경우는 최종적인 상속분은 같더라도 그 과정에서 차이가 생길 수 있다.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 조부모의 상속이 발생하면 또 다른 문제가 시작된다.

이번에는 손자와 며느리가 먼저 사망한 아들을 대신하는 대습상속인이 된다.

상속은 한 사람의 죽음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누가 먼저 사망했는지,

그때 누가 태어나 있었는지,

배우자가 있는지,

자녀가 있는지,

그리고 이후 가족관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에 따라 재산이 흘러가는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

당시 상담을 마치고도 한동안 그 가족이 생각났다.

200억 원의 재산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들을 먼저 보내야 했던 부모.

죽음을 앞둔 남편에게 아이를 보여주고 싶다며 출산을 서둘렀던 며느리.

그리고 아직 세상에 나오기도 전부터 상속이라는 법률관계의 한가운데에 있었던 아이.

태아도 상속을 받을 수 있다.

짧은 민법 조문 하나지만 실제 가족의 삶에 들어가면 이야기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리뷰 0

이야기를 읽고 느낀 점을 남겨주세요
?
따뜻한 댓글이 연재에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