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몰랐던 20년
미국에 사는 막내딸에게 아버지가 20년 가까이 돈을 보내고 있었다.
막내딸은 결혼하지 않은 채 혼자 아이를 키우고 있었고, 그 사실을 가족 중에서는 아버지만 알고 있었다.
세무사가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막내딸이 이 얘기를 지금 꺼내면 집안이 뒤집힐 거라고 저한테 신신당부를 하더군요.”
‘아, 신경 쓸 게 점점 늘어나는구나.’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또 하나가 나왔다.
출입국 기록을 대조하다 보니 이번에는 큰아들이 살고 있는 일본 쪽 체류기록이 눈에 들어왔다.
피상속인은 마지막으로 일본에 갔다가 그곳에서 사망했다.
그런데 사망하기 전 3년 정도를 살펴보니 일본 체류가 유독 잦아졌다.
“최근 3년 동안 일본에 상당히 자주 가셨네요. 사업 때문입니까?”
세무사가 잠시 머뭇거렸다.
“사실 큰아들이 그때쯤 이혼 얘기가 오갔답니다. 아버지가 손주들 걱정 때문에 자주 다녀가신 거고요.”
“아, 그럼 일본 쪽은 사업이 아니라 큰아들 문제였네요.”
“네. 그런데 하필 그 방문 중에 돌아가셨으니까요.”
미국에서는 딸의 비밀을 혼자 감싸고 있었고, 일본에서는 이혼하려는 아들의 가정을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 남아 있던 가족들은 그런 사정을 거의 모르고 있었다.
한국에 거주하는 둘째 아들을 만난 것은 재산분할 관련 서류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다가 둘째 아들의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
“조사관님, 저 궁금한 게 있는데요.”
“네. 말씀하세요.”
“미국 예금에서 나간 돈, 그거 뭡니까?”
순간 멈칫했다.
막내딸이 숨겨달라고 한 바로 그 돈이었다.
‘아, 난 이런 경우가 제일 싫다.’
어디까지 지켜줘야 하고, 어디까지 알려줘야 하는지.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인데 말이다.
잠깐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그 부분은 아직 저희도 검토 중이라 지금은 뭐라고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둘째 아들이 바로 받아쳤다.
“그거 막내한테 들어간 돈인 것 같은데요. 저만 몰랐던 것 같거든요?”
목소리가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저는 한국에서 아버지 사업 뒷바라지하면서 30년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막내는 미국에서 아버지한테 따로 돈을 받고 있었다고요?”
나는 그냥 듣고 있었다.
“형은 일본에서 살면서 아버지 정 받고, 막내는 몰래 돈까지 받고… 저만 여기서 뭐 한 겁니까?”
그 말을 듣는데 대충 그림이 그려졌다.
이 가족은 세 나라에 떨어져 살았다.
각자 자기 자리에서 나름대로 아버지와 관계를 맺고 살았지만, 서로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각자 자신만 손해 봤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며칠 뒤 배우자가 다시 찾아왔다.
첫날 일이 있어서 나도 조금 긴장했는데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뭐랄까.
첫날은 쌈닭 같았다면 이번에는 넋두리를 하러 온 사람 같았다.
“그 사람, 마지막에 큰애 집에 왜 그렇게 자주 갔는지 아세요?”
나는 알고 있었지만 그냥 듣고 있었다.
“큰애가 이혼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말렸습니다.”
잠시 말을 멈추더니 이렇게 말했다.
“너는 나처럼 살지 마라.”
그 말을 듣는데 묘했다.
미국에서 혼자 아이를 키우던 딸의 사정까지 알고 나니 그 말이 더 무겁게 들렸다.
배우자가 한참 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조사관님, 저는 그 사람이 정말 미웠어요.”
그리고 잠시 창밖을 바라봤다.
“그런데 이렇게 죽고 나니까 그 미움도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요.”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날은 세금 얘기보다 남편 얘기를 더 많이 하고 돌아갔다.
그런데 아직 막내딸의 사정은 모르는 듯했다.
조사를 계속하면서 피상속인의 국내외 생활관계를 하나씩 확인했다.
국내 자택은 피상속인 명의로 계속 유지되고 있었고 배우자가 그 집에서 실제로 계속 거주하고 있었다.
사업체 대부분도 국내에 있었다.
국내 재산은 180억 원,
해외 재산은 100억 원으로 국내 재산 규모가 더 컸다.
건강보험, 국민연금 등 국내 사회보장 관계도 계속 유지되고 있었다.
해외 체류 내용을 살펴보니 미국은 주로 사업과 관련된 체류였고, 마지막 몇 년간 일본 방문이 늘어난 것은 큰아들의 가정 문제 때문이었다.
자료를 모두 놓고 보니 결론은 점점 분명해졌다.
“이 정도면 단순히 국내 체류일수가 170일이라는 사실만 가지고 비거주자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결국 피상속인을 거주자로 판단하기로 했다.
그러자 상속세 과세범위가 완전히 달라졌다.
비거주자라면 국내에 있는 상속재산을 중심으로 과세하지만, 거주자로 판단하면 해외 재산까지 포함한 전체 상속재산이 우리나라 상속세 과세범위에 들어온다.
이 사건에서는 국내 재산 180억 원뿐 아니라 해외 재산 100억 원까지 포함해 총 280억 원을 놓고 상속세를 계산해야 했다.
결론을 설명하자 배우자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뜻밖의 말을 했다.
“결국… 저 때문에 세금이 더 나온 거네요.”
“사모님 때문이 아닙니다. 국내외 생활관계를 종합적으로 판단한 겁니다.”
배우자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제가 그 사람 곁을 안 떠나서요.”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평생 미워하면서도 못 떠났던 게 결국 세금으로 돌아오는 거잖아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논리라 나는 그냥 듣고만 있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세금으로 끝날 상황이 아니었다.
미국에 사는 막내딸에게 20년 동안 흘러간 돈.
그 사실을 둘째 아들이 눈치채면서 이번에는 280억 원의 재산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를 두고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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