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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SON 02 · 서울청 조사 3국

7화. 내가 36년 간 본 가장 글로벌 했던 상속(1)

2026.09.21·약 5분

170일의 남자


서울청 조사3국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상속세 조사 건 하나를 배정받았다. 신고서를 펼쳐보다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피상속인은 아버지, 국적은 한국이었다.

그런데 상속인들이 세 나라에 흩어져 있었다.

배우자는 한국 거주.
큰아들은 일본 거주.
작은아들은 한국 거주.
막내딸은 미국 거주.

‘가족이 삼국에 흩어져 있네.’

재산 목록도 화려했다.

국내 부동산 100억 원.
국내 주식 50억 원.
국내 금융재산 30억 원.

해외 부동산 50억 원.
나스닥 주식 20억 원.
미국 예금 30억 원.

전부 합쳐서 280억 원 정도였다.

그런데 신고서 사이에 끼어 있는 자료를 살펴보다가 메모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상속세 조사 건을 배정하기 전에 1과에서 신고서를 서면으로 대략 검토하고 의견을 붙여주는 경우가 있는데, 거기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피상속인 국내 체류일수 170일. 비거주자 주장.’

이 한 줄을 보는 순간 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거주자냐, 비거주자냐가 이번 조사의 핵심 쟁점이 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상속세에서 거주자와 비거주자의 구분은 매우 중요하다.

피상속인이 거주자라면 국내 재산뿐 아니라 해외 재산까지 우리나라 상속세 과세대상이 될 수 있지만, 비거주자라면 국내에 있는 상속재산을 중심으로 과세범위가 정해진다.

이 사건에서는 그 차이가 해외 재산 100억 원이었다.

세무조사 사전통지서를 보냈다.

얼마 뒤 대표 상속인인 배우자와 세무사가 조사국을 찾아왔다.

인사를 마치고 자리에 앉았는데, 세무사가 서류를 펼치기도 전에 배우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희 남편은 비거주자였습니다. 그건 제가 제일 잘 압니다.”

목소리가 단단했다.
흔들림이 없었다.

“아, 네. 그 부분은 이제 천천히 조사해보겠습니다.”

“조사해보나 마나 제 말이 정확합니다.”

“네. 그러신가요? 하지만 단순히 체류일수만 가지고 판단하는 것은 아닙니다. 재산, 가족, 소득 등 여러 생활관계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배우자가 헛웃음을 지었다.

“그럼 뭘로 판단하시는데요? 그 사람 마음이라도 들여다보시게요?”

배우자가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저는 30년을 이 집 지켰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1년의 절반 이상을 밖으로 돌았어요. 그런데도 저 때문에 거주자가 된다고요?”

“…그렇게 판단될 수도 있습니다.”

배우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나라 법은 웃기네요. 정말.”

더 말을 하면 바로 시비가 붙을 것 같았다.

일단 그날은 상견례 정도만 하고 돌려보냈다.

첫 대면부터 이 사건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쉽게 끝나는 조사가 없구나.’

그런데 이상했다.

이 사람은 단순히 세금이 많이 나올까 봐 화가 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남편에게 뭔가 단단히 마음이 틀어져 있었고, 오랫동안 쌓인 원망이 가득해 보였다.

체류일수 170일이면 비거주자일까?

여기서 잠깐 거주자 판정 기준을 짚고 넘어가자.

거주자와 비거주자는 단순히 출입국 기록의 날짜만 계산해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국내에 주소를 두고 있는지, 국내에서 어느 정도 생활했는지, 직업은 어디에 있는지, 생계를 같이하는 가족은 어디에 있는지, 재산과 생활의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 등 객관적인 생활관계를 종합해서 판단한다.

따라서 국내 체류일수가 183일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무조건 비거주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사건에서 비거주자라고 주장할 수 있는 가장 눈에 띄는 자료는 국내 체류일수 170일이었다.

그런데 다른 자료들은 조금씩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국내에 배우자가 살고 있었다.

국내에 자택이 있었다.

사업체 대부분이 국내에 있었다.

재산 역시 해외보다 국내에 더 많았다.

그날 이후 세무사가 관련 자료를 준비해서 다시 찾아왔다.

그런데 표정이 편치 않았다.

“조사관님, 이 댁 사정이 좀 복잡합니다.”

“그러게요. 사모님이 뭔가 화가 많이 차 계신 것 같았습니다.”

“피상속인이 젊었을 때부터 미국에서 사업을 벌이셨는데, 그때부터 집안에 소문이 좀 있었답니다. 미국에 따로 생활이 있는 게 아니냐고요.”

“아, 그래요? 근거가 있는 얘기입니까?”

“확인된 건 없습니다. 그런데 사모님이 그 얘기를 오랫동안 들으면서 사셨답니다.”

그제야 조금 이해가 됐다.

첫날 배우자가 했던 말.

“저는 30년을 이 집 지켰습니다.”

그 말은 단순히 거주자 판정을 따지는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미국 예금 자료를 확인하던 중 이상한 자금 흐름 하나가 눈에 걸렸다.

미국 예금 30억 원 중 일부가 한 계좌로 오랫동안 정기적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계좌의 주인은 미국에 살고 있는 막내딸이었다.

“세무사님, 이 자금 말입니다. 따님에게 계속 나갔는데 이게 뭡니까?”

세무사가 자료를 한참 들여다봤다.

“확인해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며칠 뒤 세무사가 다시 찾아왔다.

그런데 첫마디가 뜻밖이었다.

“조사관님, 이거… 막내딸이 미국에서 오래전부터 혼자 아이를 키우고 있었답니다.”

“결혼을 했나요?”

“아니요. 안 했습니다.”

잠시 말이 끊겼다.

“그런데 그 사실을 집안에서 아무도 몰랐답니다.”

“아무도요?”

“네. 아버지만 알고 있었답니다.”

그제야 미국 예금에서 정기적으로 빠져나가던 돈의 정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럼 이 돈은…”

“손주 양육비였습니다. 아버지가 20년 가까이 혼자 보내준 겁니다.”

배우자도 몰랐다.

두 아들도 몰랐다.

아버지와 딸.

둘만 알고 있던 20년의 비밀이었다.

그리고 그때는 몰랐다.

이 돈 때문에 세무조사보다 더 복잡한 일이 벌어지게 될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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