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개인적인 판단은 채권 발행 취지로 볼 때, 이자나 프리미엄은 모두 인정해줘야 한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이걸 인정하느냐 마느냐가 상속세 수 백 억이 걸려있다 보니 나 역시 쉽게 판단하기 어려웠다. 결재가 수월하게 날 리도 없었다.
결국 끙끙대다가 팀장들끼리 회의도 하고 해서 결국 채권매입은 인정하되 이자는 과세하는 걸로 결론을 내렸다.
그때 대체로 국세청 입장은 채권 액면가액만 인정해주고 이자와 프리미엄은 과세했다가 나중에 모두 패소 한 걸로 기억한다.
마지막으로 난 상속인에게 채권 실물을 보자 했다.
그렇게 큰 세금을 면제해주는 건데, 당연히 실물은 확인해야 했으니까.
그런데 그날은 세무대리인 없이 상속인 혼자 왔다.
왠지 세무사님한테도 보여주지 않으려는 듯한 느낌이 들긴 했는데, 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채권 실물을 확인했다.
실무적으로,
채권을 상속세나 자금출처조사에서 면제해 주려면, 채권 실물 이면에 세무서 직원이
"이 채권은 상속·증여세를 면제 받은 채권임"
이라고 적힌 고무인을 찍어서 원본은 채권 주인을 주고, 세무서는 복사본을 관리대장에 기록하고 보관하게 되어 있다.
이렇게 안 하면 시중에서 거래되는 채권들이 세금 면제를 몇 번이고 받을 테니 말이다.
나는 처음에는 그냥 대수롭지 않게 상속세 신고하면서 세무서에서 찍어 왔나보다 생각하고 넘어 가려다가, 잠깐 계시라 하고 밖에 나와 잠시 해당 세무서 직원과 확인 통화를 했다.
세금 면제 고무인을 찍어준 적이 있는지.....
그 직원 왈.
"요즘 그런 채권이 좀 들어오는데, 말씀하신 채권은 대장에 고무인 날인 기록이 없습니다."
헉!.
그 사실을 몇 번이고 확인하는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미소가 떠올랐다.
'아. 쟁점 없이 처리할 수 있겠구나. 이건 상속세 280억 추징이다!'
한편으론, 가슴을 쓸어 내렸다. 만약 마지막 이 확인이 없었으면 280억 조세일실로 난 아마 징계를 단단히 먹었을 것이다.
이 바보가 이미 누군가가 면제 받은 채권을 또 프리미엄까지 주고 산 거다.
중복 면제가 안 되는 채권을 모르고 명동 사채시장에서 급하게 구입한 거지.
"죄송하지만 이건 상속세가 면제 안 되는 채권입니다."
했더니 놀란 눈이 소처럼 커지더니, 뒤로 자빠지려고 한다.
그리곤 바로 명동 사채업자한테 달려가는 것 같았다.
또 어떤 사람은 명동에서 구입한 채권이 위조채권이라서 자살했다는 신문기사가 나기도 했다.
참 이래저래 시끄러웠던 채권 얘기였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다시는 이런 채권이 발행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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