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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SON 02 · 서울청 조사 3국

5화. 내가 36년 간 본 최고로 황당한 상속(2)

2026.09.08·약 4분

잠깐, 이 묻지마 채권이 뭔지 보고 가자.

1997년 11월 발생한 국가부도사태를 타개하기 위해 전 국민이 안간힘을 쓰고 있을 때, 1998년 초쯤으로 기억한다.
국가는 지하자금이라도 양성화시켜 어려운 재정을 충당하려고 했었다.
그래서 나온 게 약 2조 원 규모의 비실명 채권 발행이다.

일명 '묻지마 채권'이라고도 하는데 "자금출처를 묻지 않는다"는 이유로 붙은 별명이다.

이 채권을 가진 사람은 상속세도 면제, 자금출처조사도 면제였으니, 그야말로 이름 그대로의 '묻지마'였다.
근거법령은 '금융실명거래및비밀보장에관한법률 부칙 9조'로 기억된다.
'특정채권거래에 대한 세무조사 특례....'

종류는 증권금융채권, 기업구조조정채권, 고용안정채권 등 네 다섯 가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표면금리는 6.5%, 만기는 5년짜리.
28년이 지났는데도 이름이 기억날 정도로 생생하다.

당시 시중금리가 15~20%를 오르내리던 시절이라 초기에는 인기가 없었는데, 시중금리가 떨어지고 "상속·증여세 면제"라는 소문이 퍼지자 순식간에 품귀현상이 일더니 프리미엄까지 붙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상속재산의 50%가 면제되는 효과.
그야말로 세금판 로또였다.
액면가 1억짜리가 1억 3천까지 거래되기도 했으니까.

예를 들어, 아버지가 500억을 가지고 있고 위독하다면?
현금을 찾아 '묻지마 채권'을 사두면 상속세 250억 원을 아예 내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가 된다.

지금 생각하면 국가가 얼마나 다급했으면 이렇게라도 했을까 싶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채권이 다시 발행되는 일이 없길 바란다.
그건 또 국가가 부도란 뜻이니까.

아무튼 이 사람이 그 채권을 사버린 거다.

세무조사 통지서를 보내고 나서 사망진단서와 채권구입 시점을 비교해보니,

'어? 상속개시일과 채권구입일이 같은 날이다.'
'아. 이건 뭔가 쟁점이 있겠다' 싶은 생각이 스쳐갔다.

얼마 후 세무사님과 맏아들이 함께 찾아왔다.
인사를 하고 "상속 일과 비실명 채권 구입 일이 같네요?" 하고 물으니,
맏아들은 정말 긴박했다는 듯이 그때 상황을 영웅담처럼 설명해준다.

내용인즉,
아버지가 98년 말쯤 위독하시다는 의사 소견을 듣고, 급히 가족회의를 한 다음, 오전에 주거래 증권사에 전화해서 모든 자금을 수표로 인출하게 하고, 급히 명동 사채시장에서 묻지마 채권을 구입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큰아들이 결국 찾아서 채권구입 서류와 채권 실물을 준비해서 병원으로 오도록 부탁하고, 오전 11시쯤 상속인들이 병원에 집합한 상태에서 수표와 채권매입 계약서를 작성하고 대금을 지급했다. 영수증을 받고.

그리고 맏아들은 사채업자와 함께 채권 실물을 가지러 갔다가 다음 날 점심때가 좀 지나 채권 실물과 함께 돌아왔어. 말 그대로 상당히 긴박하게 움직인 게 상상이 됐다.

전체 대금 400억 중 채권의 액면가액은 300억, 나머지는 이자와 프리미엄 100억.

그런데 그날 오후 아버지가 돌아가신 상황.

여기까지 들으면서 나는 머릿속이 빙빙 돌기 시작했다.
일어날 수 있는 많은 쟁점들이 떠오른다.

첫째,채권구입 시점을 상속개시 전으로 볼 것인가, 개시 후로 볼 것인가의 문제.
대금지급 시점으로 보면 상속개시 전에 구입한 게 되고, 채권 실물 수령 시점으로 보면 상속개시 후 구입한 게 되니, 언제로 보느냐에 따라 상속세 200억이 결정되는 문제가 생기고.

둘째,액면가 300억짜리를 이자와 프리미엄을 포함하여 400억에 구입했는데, 구입자금 400억을 모두 인정할 것인가, 아니면 액면가만 인정할 것인가.

나는 머리에서 쥐가 나려고 했다.
선례가 없는 일이다 보니 국세청 재산세과 예규 담당자도, 그 당시 재경부 예규 담당자도 정확한 답을 주지 못했다.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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