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와 친딸
서울청 조사3국에 있을 때였다.
상속세 조사 몇 건을 한꺼번에 배정받았는데, 이번 사건들은 좀 골치 아플 것 같아 느낌이 좋지 않았다.
그중 첫 번째 신고서를 펼치는 순간부터 뭔가 심상치 않았다.
피상속인의 재산은
부동산 400억 원,
금융자산 250억 원.
총 650억 원 정도였다.
재산가액도 상당했지만 내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상속인의 관계였다.
양자와 친딸.
‘상속개시일이 벌써 2년 반 전이네.’
요즘은 상속세 신고 후 비교적 빠르게 조사에 착수하지만 당시에는 사건이 밀려 신고서를 접수하고 2~3년쯤 지나 조사에 배정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동안 이 집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조사를 시작해봐야 알 수 있었다.
세무조사 사전통지서를 보냈다.
얼마 후 대표상속인 자격으로 한 사람이 세무사님과 함께 찾아왔다.
양자였다.
나는 친딸이 올 것으로 생각했다.
첫인상부터 노련한 사업가 느낌이었다.
보통 첫 면담에서는 세무사님이 사건의 전반적인 내용을 설명하고, 상속인은 내가 추가로 질문할 때 옆에서 답변하는 정도다.
그런데 이 사람은 달랐다.
“조사관님, 이 상속 배경을 먼저 말씀드리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러더니 양자가 먼저 이야기를 시작했다.
친딸이 태어나면서 달라진 가족
여기서 잠깐 양자의 상속관계를 짚고 가자.
일반적인 양자는 입양되더라도 친생부모와의 친족관계가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에 친부모와 양부모 양쪽의 상속관계가 존재한다.
반면 친양자는 법원의 친양자 입양절차를 거치면서 원칙적으로 종전 친족관계가 종료된다.
이 사건의 양자는 일반적인 양자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상속이 발생한 뒤 이미 상당히 큰 소송을 치른 상태였다.
양부에게는 원래 자식이 없었다.
그래서 조카뻘 되는 이 사람을 정식으로 입양했다.
그런데 몇 년 후 양부가 50세 가까운 나이에 재혼했다.
그리고 재혼한 아내와의 사이에서 늦둥이 친딸이 태어났다.
양자와 친딸의 나이 차이는 열다섯 살 정도였다.
양자가 말했다.
“친딸이 생기면서부터 저는 아버지한테 점점 남처럼 되어가더라고요.”
친딸은 성장한 뒤에도 특별한 직업 없이 지냈다고 했다.
성격도 만만치 않았다고 했다.
“뭐든 자기 뜻대로 안 되면 언성부터 높이는 사람입니다.”
사위는 대학교수였다.
“세상 물정은 잘 모르는데, 아내가 시키는 대로는 다 하시더라고요. 아마 재산 때문이었을 것 같습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양자의 이야기였다.
나는 일단 듣고만 있었다.
“오빠는 어차피 양자잖아.”
아버지가 말년에 인지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친딸 부부가 병간호를 이유로 집에 자주 드나들었다고 한다.
양자가 보기에는 그 무렵부터 뭔가 이상했다.
아버지에게 여러 서류를 보여주고 도장을 찍게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한번은 병문안을 갔다가 친딸과 마주쳤다.
그때 친딸이 말했다고 한다.
“오빠는 어차피 양자잖아. 왜 자꾸 끼어들어?”
양자는 그 이야기를 하면서 씁쓸하게 웃었다.
그리고 몇 주 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장례를 치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친딸이 유언장을 꺼내 들었다.
“아버지가 전 재산을 나한테 남겼으니까 그리 알아.”
양자는 유언장을 보는 순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필체가 좀 이상했고, 작성 날짜도 아버지가 이미 사람을 잘 못 알아보실 때였습니다.”
양자는 곧바로 유언의 효력을 다투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고 했다.
양부는 생전에 자신을 상당히 아꼈고, 사업을 물려주겠다며 하나씩 가르쳤다고 한다.
자신도 열심히 배우면서 오랫동안 양부의 사업을 도왔다.
그런데 친딸이 전 재산을 자신에게 남겼다는 유언장을 들고 나오자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는 것이다.
상속전문 변호사를 선임했다.
병원 진료기록과 인지력 검사 결과를 확보했다.
유언장 작성 당시 아버지를 봤던 사람들의 진술도 모았다.
필체 감정도 진행됐다.
그리고 유언장 작성일로 되어 있는 시점을 확인해보니 아버지는 이미 그 전에 인지력 검사에서 심각한 저하 소견을 받은 상태였다고 한다.
결국 1년이 넘는 소송 끝에 유언장은 효력을 인정받지 못했다.
그 소송이 끝난 것이 상속개시 후 대략 1년 반 정도 지난 시점이었다.
이후 상속재산분할 절차가 마무리됐다.
그리고 다시 약 1년이 흘렀다.
바로 그때,
서울청 조사3국의 상속세 조사가 시작된 것이다.
나는 양자에게 말했다.
“사장님께서 소송에 이기신 건 알겠는데, 저희가 하는 상속세 조사는 별개라서요.”
양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건 세무사님과 충분히 의논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소송은 끝났다.
하지만 이 집안의 재산을 둘러싼 이야기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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