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억 상속인이 생후 3개월 아기였다
서울청 조사3국에 있을 때 이야기다.
평소처럼 상속세 신고서 하나를 배정받았다.
중견기업 회장님의 상속이었는데 상속재산이 회사 지분, 부동산, 현금 등 약 1천억 원 정도 됐다.
‘내가 짬밥이 좀 되니 이제 제법 큰 것도 주는구나.’
싶었다.
보통 금액이 아주 크거나 대기업 오너의 상속이거나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들은 조사4국으로 배정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가족관계와 상속인을 확인하다가 눈에 들어오는 문구 하나가 있었다.
‘1순위 단독 대습상속인 생후 3개월 아기’
상속인이 생후 3개월 된 남자아이 한 명이었다.
‘어? 피상속인 재산이 1천억인데, 상속인이 갓난아기 한 명?’
일단 가족관계부터 다시 봤다.
피상속인은 중견기업을 운영하는 회장님이고, 배우자를 일찍 여의었고 외아들 하나만 뒀다.
호적을 보니 피상속인의 형제들은 세 명이 있었고 모두 피상속인의 회사에 근무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외아들이 아버지보다 먼저 사망했다.
‘며느리는?’
호적상에는 보이지 않았다.
일단 세무조사 사전통지서를 보내놓고 금융조회 공문도 만들어 보냈다.
‘아마 법정대리인으로 아기의 생모가 오겠구나.’
싶었다.
예상대로 세무사님과 젊은 여자분이 조사국에 방문했다.
나는 자리를 권하고 차를 대접한 후 기본적인 안내사항을 설명했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혼인신고를 미처 못 하신 상태에서 남편분이 돌아가셨나 봐요?”
잔뜩 긴장하고 경계하는 얼굴빛을 하더니 머뭇거렸다.
“아, 말씀하시기 곤란하면 안 하셔도 됩니다.”
했더니,
“아, 아니에요. 맞습니다.”
하면서 아주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스토리인데 막상 현실에서 들어보니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얘기인즉,
회장님 아들이 사망할 당시 결혼을 약속한 여자가 임신 중이었다.
그 아이가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회장님까지 돌아가신 것이다.
아이 엄마는 아들과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니까 약혼한 상태에서 사망해서 아직 법률상 며느리는 아닌 것이다.
상속인도 아니고.
결국 생후 3개월 된 손자가 아버지를 대신해서 회장님의 재산을 상속받는 구조였다.
회사에는 회장님 형제들과 그 자녀들이 있었고 회사 지분도 일부 가지고 있었다.
중요한 자리도 맡고 있었다.
여기서부터 대충 그림은 그려지긴 하는데….
무튼.
회장님은 외아들에게 회사를 물려주려고 했다고 한다.
뭐 당연한 생각이고.
어릴 때부터 후계자 수업까지 시켰고, 아들은 회사 전무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런데 미리 증여 작업을 하지 않은 게 좀 이상하긴 했다.
아들 상속과 관련해서 처리된 게 보이지 않아서 의아했는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해가 됐다.
아들이 결혼하겠다고 데려온 여자를 회장님이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던 것이다.
집안 배경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회장님은 자신이 원하는 집안의 여자와 결혼하기를 원했고, 아들은 버텼다.
“이 사람 아니면 결혼 안 합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내가 얘기해 놨으니, 주말에 선을 보도록 해. 자꾸 말 안 들으면 회사를 물려줄 수 없다.”
여기까지는 별로 낯설지도 않았다.
드라마에서 많이 나오는 이야기니까.
다만,
‘이런 일이 현실에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신기할 따름이었다.
결혼식과 혼인신고가 계속 미뤄지던 중 여자가 임신을 했다.
그래도 회장님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임신 6개월쯤 됐을 때였다.
비가 많이 오던 날.
아들이 약혼녀를 만나러 차를 몰고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사고 원인은 빗길 과속운전.
운전자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회장님은 그 소식을 듣고 그 자리에서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 갔다.
남겨진 여자는 임신 6개월.
남편도 잃었고 혼인신고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야기를 하다가 남편 사고 이야기가 나오자 잠깐 말을 멈췄다.
“며칠 동안은 실감이 안 났어요. 밥도 못 먹고 그냥 울기만 했어요.”
그러다가 뱃속의 아이가 움직였다고 한다.
“그때 정신을 차렸어요. 슬퍼하고만 있을 수가 없었어요. 이제 제가 이 아이를 지켜야 하잖아요.”
그런데 약혼자가 사망하고 나서부터 진짜 문제가 시작됐다.
회장님 형제와 그 자녀들이 회사에 상당수 있었다.
그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상속 구도가 예상에서 완전히 빗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회장님에게는 배우자가 없다.
외아들은 먼저 죽었다.
직계존속도 없다.
그렇다면 그다음 순위가 본인들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약혼자라는 여자가 있었고, 더구나 뱃속에 회장님의 핏줄이 있었다.
그 뱃속의 아이가 무사히 태어나면?
끝이다.
아들의 직계비속인 그 아이가 아버지를 대신해서 유일한 1순위 단독 대습상속인이 되기 때문이다.
회장님의 1천억 재산을 상속받을 사람이 생기는 것이다.
아기 엄마가 조용히 말했다.
“그때부터가 진짜 지옥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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