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 조사로도 이런 세금들이 나온다
돈의 꼬리를 잡다
서울청 조사3국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상속세 조사 하나를 배정받았다.
처음 신고서를 봤을 때는 별것 없어 보였다.
상속인은 배우자와 자녀 둘.
상속재산은 금융자산 150억 원, 부동산 100억 원 정도였다.
그런데 기본 서면검토서를 살펴보니 피상속인이 생전에 여러 사업을 했다.
부동산임대업도 했고, 식당도 운영했다.
유흥업소도 하나 있었고, 식자재를 도·소매하는 법인도 가지고 있었다.
대략적인 그림은 그려졌다.
‘식자재 법인을 통해 식당과 유흥업소에 식재료를 공급하고, 그렇게 번 돈으로 부동산을 샀겠구나.’
그런데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유흥업소였다.
과거에 유흥업소 특별조사를 여러 건 해본 경험이 있었다.
유흥업소를 보면 당시 조사관 입장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몇 가지 단어가 있었다.
현금거래.
카드깡.
바지사장.
차명계좌.
물론 유흥업소를 운영한다고 모두 문제가 있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과거 조사 경험이 있다 보니 일단 눈여겨볼 수밖에 없었다.
유흥업소 특별조사 이야기는 나중에 별도로 다뤄보겠다.
처음에는 별것 없어 보였다
얼마 뒤 배우자가 담당 세무사와 함께 대표 상속인 자격으로 조사국을 방문했다.
첫 상견례였다.
처음부터 깊은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가족관계와 사업내용 등 기본적인 사항만 확인한 뒤 돌려보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조사가 그렇게 복잡해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며칠이 지나자 금융기관에 요청했던 금융거래 자료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사관들의 지루한 노동이 시작됐다.
엑셀 입력이었다.
지금은 금융거래 자료를 파일로 받아 가공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금융기관에서 종이자료로 보내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 자료를 조사관이 직접 엑셀에 입력했다.
피상속인.
배우자.
자녀 둘.
금융기관.
계좌번호.
거래일자.
출금액.
입금액.
비고.
거래내역을 하나씩 입력했다.
가족 네 명의 금융거래를 모두 입력한 뒤 날짜순으로 정렬한다.
그러면 그때부터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아버지 계좌에서 돈이 빠졌다.
며칠 뒤 배우자 계좌에 비슷한 금액이 들어왔다.
자녀 계좌에서 거액이 출금됐다.
그 시기에 부동산을 취득했다.
처음에는 서로 관계없어 보였던 숫자들이 시간순으로 늘어놓으면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기 시작한다.
그걸 다시 이리저리 가공하면서 조사에 필요한 거래를 뽑아낸다.
나는 이런 작업을 ‘돈꼬리잡기’라고 생각했다.
상속세 조사는 결국 돈의 꼬리를 따라가는 일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상속재산 누락이나 재산평가도 중요하지만, 금융거래를 따라가다 보면 신고서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과거의 자금이동이 드러난다.
특히 상속개시 전 일정 기간 동안 가족 간에 오간 돈을 확인하면 사전증여 여부가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종종
“상속세 조사라고 쓰고, 사전증여 조사라고 읽는다.”
라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금융거래가 너무 많았다
문제는 이 집안이었다.
거래가 너무 많았다.
주거래 은행만 두세 곳이었는데 확인해야 할 입출금이 끝도 없이 나왔다.
자료를 입력하면서 생각했다.
‘이거 아주 고생 좀 하겠는데.’
그래도 방법이 없었다.
전부 입력했다.
그리고 모든 거래를 날짜별로 정렬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헉.”
가족 간 거래도 많았지만 그것만이 아니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의 이름으로 돈이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상한 거래가 한두 건이 아니었다.
‘이 사람, 세금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 자체가 별로 없었던 것 같은데.’
그냥 자기 생각대로 돈을 움직인 흔적이 너무 많았다.
일단 거래를 세 종류로 나눴다.
첫째, 가족 간에 이체된 거래를 사람별로 따로 뽑았다.
1차 증여혐의 자료였다.
둘째, 상속개시 전 2년 이내의 주요 출금내역을 별도로 정리했다.
추정상속재산 검토와 사용처 소명을 위한 자료였다.
셋째, 그보다 이전의 거래 가운데 일정 금액 이상의 입출금 거래를 다시 추렸다.
이 거래들은 은행에 개별 금융거래 조회를 할 자료였다.
내 기억으로는 수백 건이 넘었다.
수백 건의 거래를 하나씩 뒤졌다
개별조회라는 것은 이런 것이다.
예를 들어 어느 날 피상속인 계좌에서 1억 원이 출금됐다고 해보자.
그 돈이 어디로 갔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러면 해당 은행 지점에 공문을 보낸다.
당시에는 그 거래의 전표 사본을 요청하고, 수표로 지급됐다면 수표 앞·뒷면 사본까지 요구했다.
수표 뒷면에 누군가의 이름이 나오면 그 사람을 다시 확인한다.
그 수표가 다른 계좌에 입금됐다면 그 계좌의 입금전표와 거래내역을 다시 확인한다.
그리고 거기서 또 다른 돈의 흐름이 나오면 다시 따라간다.
말 그대로 돈의 꼬리를 잡고 계속 따라가는 것이다.
한두 건이면 모르겠다.
이 사건은 그런 거래가 수백 건이었다.
은행에 개별조회서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예상했던 일이 벌어졌다.
은행에서 전화가 왔다.
“조사관님, 저희는 일 언제 합니까? 이것만 하라는 겁니까?”
다른 은행에서도 전화가 왔다.
“이걸 언제 다 찾아서 보내드립니까?”
보내놓은 은행마다 항의전화가 왔다.
어떤 은행 직원은 결국 이렇게 말했다.
“차라리 서고를 열어드릴 테니까 조사관님이 직접 오셔서 찾아가세요.”
나는 미안하기도 했다.
“알겠습니다. 제가 직접 가겠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은행이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조사관에게 서고를 열어주고 직접 자료를 찾게 하는 것은 적절한 방식이 아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지금처럼 전산화가 되어 있지 않았고, 현장에서 그렇게 일을 처리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날부터 나는 거의 두 달 동안 해당 은행들로 출근하다시피 했다.
나중에는 은행 수위 아저씨와 인사를 나눌 정도가 됐다.
은행 직원들도 내가 직접 와서 전표를 찾으니 미안했는지 이것저것 많이 도와줬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그 은행 서고에서 시작됐다.
나는 처음부터 내가 찾으러 간 전표만 보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날,
전표철 하나를 넘기다가 이상한 거래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 거래 하나가 나중에 40개가 넘는 차명계좌로 이어졌다.
리뷰 0
이야기를 읽고 느낀 점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