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에 있을 때의 일이다. 어떤 고객이 상속세를 문의하고 싶다고 상담 신청이 들어와서 만나보니, 3남 2녀 중의 장남이었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상속재산 분할작업은 하셨습니까?”하고 물으니
“이제 해야죠. 제 동생들은 착해서 내가 하자는 대로 따라 올겁니다.”라고 웃으면서 대답한다.
나도 웃으면서 얘기했다.
“제 경험상 생각처럼 쉽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 협의분할 하시고 협의분할서와 말씀드린 상속세 신고자료 준비되면 다시 오시지요” 하고 보냈다.
물론 나는 알고 있었다. 결국 또 싸우고 올거라는 걸.
한 달 쯤 지나서 다시 상담신청이 접수되고 미팅을 해보니, 안내해준 자료들은 잘 준비했는데 협의분할서가 빠져 있다.
그래서 물었더니, 얼굴이 붉어지며,
“동생들이 이견이 많아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곧 마무리 될 테니 준비되는 대로 드리겠습니다”며 표정이 굳어졌다.
이 케이스는 재산분할만 세 달을 끌고 진통을 겪고 나서야 간신히 해결되고, 결국 싸우고 싸우다가 법정지분대로 분할하는 걸로 결론이 났다.
이게 꼭 답은 아닐 수도 있지만, 내 경험상 상속재산 싸움의 이유들은
-부모님 생전에 함께 모이던 가족은 이제 각자의 가족만 챙긴다.
생전에 자주 손주들을 데리고 와서 우애 깊은 모습들을 보니 부모님도 자기 자식들은 재산싸움 안 할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상속인들은 각자의 처자식만 생각한다.
-상속인 각자의 배우자가 간섭하며 싸움이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처음에는 관심 없는 척 하다가 막상 분할 시점이 되면 살짝 의견 주는 모양새로 끼어들기 시작한다. “내가 아는 세무사한테 들었는데 말야.....”
예전에 장난삼아 이들을 ‘배우자가 아니라 배후세력’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상속인들의 생활수준이 다르면 더 가지려는 사람이 분명히 나타난다.
상속인 중에 사업이 망하거나, 생활이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자신이 더 갖기를 원하고 그렇게 얘기가 흐르다 보면, 금방 싸움으로 번진다.
-각자 부모님 재산 형성에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지분이 다르다.
언쟁이 시작되면 평생 각자가 도움이 되었거나, 어른들 아플 때 간호한 거 등등 내 업적은 드러내고 상대방은 깎아 내리기 시작한다.
-생전에 부모님이 각자에게 준 재산을 다시 계산한다.
“너는 예전에도 사업한다고 아버지 돈 가져다가 말아 먹었잖아... ”
“너 결혼할 때 아버지가 1억 줬잖아. 난 그런 것도 없었어”
“너 집살 때 엄마가 준 돈으로 보태서 산 거잖아”
단골 멘트들이다.
-다른 상속인이 주장하는 지분에 대하여 인정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너 준 주식은 몇배가 뛰어서 넌 많이 벌었잖아”
-처음 협의가 잘 되지 않으면 상대방에 대한 불만을 하기 시작한다.
“너는 잘한게 뭐가 있어, 아버지 수술하셨을 때, 병원 다니면서 병수발 한 게 나야”
-과거 집안의 모든 문제들이 다시 거론되기 시작하며 서로 탓을 한다.
지난 과거의 집안 일에서 각자가 실수를 했거나, 부담을 짊어 진 부분이 있거나 하는 부분들을 모조리 꺼내서 다시 평가하고 질타하기 시작한다.
-싸움이 격해지면 무조건 법으로 하자하고 변호사까지 동원한다.
협의분할서를 아예 내 앞에서 쓰려고 변호사까지 대동하고 온 경우도 있었다. 어차피 상속세만 끝내고 다시 소송 할 거라고.
-상속세 업무가 끝나도 서로 인연을 끊고 산다.
다시 화해하고 잘 산다는 집은 아직 들은 적이 없다.
이런 이유 들 말고도 집안마다 다양한 내용으로 분쟁이 있다. 하지만 공통적인 마무리는 재산분할 협의로 시작해 감정싸움으로 번진다.
소위, 진흙탕 싸움이 한바탕 지나고 나서야 상처투성이로 끝나게 되는데, 재산가액이 소액이던 고액이던 싸우는 모양새는 비슷하다. 싸우지 않고 잘 마무리 하려면 위의 내용을 염두에 두고 서로 배려하고 양보해야 가능한 일이다.
어느 두 자매가 상담 요청을 해왔다. 언니는 미국에 살고 동생은 한국에 있는데, 아버지가 위독해서 언니는 비상상황에 대비해서 잠시 한국에 들어와 있었다. 두 사람은 보기에도 좋아 보이고 부러울 정도로 밝고 우애가 깊어 보였다. 상담 내용은 상속이 발생할 경우의 제반 절차나 주의할 사항 등 이었다. 물론 협의분할에 대한 내용도 안내를 했다.
두 자매는 서로 ‘언니가 가져, 니가 가져 하면서 호호’ 하고 웃기도 했다.
그로부터 6개월 정도 지난 시점에 동생이 따로 찾아 왔다. 언니랑 원수가 되어 있었고, 소송 준비 중이라며 형부가 과거에 아버지로부터 지원을 좀 받아서 사업한다고 말아 먹은 재산이 3억 정도 있는데 그건 상속재산에서 제하고 나눠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물어 왔다. 나는 자주 보던 일이기는 하지만 막상 두 자매의 다정했던 모습들을 떠올리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어쩌다 이리 됐냐고 묻지도 못했다.
이런 사례는 수 백 건이 넘는다.
가장 평화롭게 나눈 사례는 2남1녀 중 장남이 모두 집합시킨뒤,
“자 우리 서로 아버지 생전에 크게 재산을 미리 물려받거나 갖다 쓴 돈이 없으니 무조건 1/n로 나눈다. 이의 있으면 얘기해 다 들어 줄게” 라고 해서 끝났던 집안이 생각난다.
이렇게 상속재산을 나누는 일은 생각보다 너무 어려운 작업이다. 심지어 재산분할관련 소송까지 들어 가게 되면 아주 길고 힘든 싸움이 시작된다. 생전에 부모님이 더 줬다면서 유류분 청구까지 하게 되면 내용도 복잡해지고 시간도 길어진다. 또한 국세청도 소송 계류 중 인 건 세무조사 하지 않고 확정 판결이 나야 조사를 한다. 이때는 늘어진 기간만큼 추징 세액에 대한 납부불성실 가산세가 추가되게 된다.
힘들게 고생해서 재산을 물려준 부모님이 지하에서 보면 가슴을 쥐어 짤 일이다. 역사드라마나 영화 등을 보면 형제지간에 아버지의 권력을 물려 받기 위해 서로 투쟁하고 죽이는 장면들을 많이 본다. 어떤 진화론적 측면의 전문가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원시시대부터 형제들은 아버지의 인정을 받기 위해 투쟁하는 존재들이다!”
정말 그런 걸까.
리뷰 0
이야기를 읽고 느낀 점을 남겨주세요